나의 수필세계

아이들이 없는 고향에도 눈은 내리고

죽장 2013. 1. 2. 15:19

아이들 없는 고향에 눈은 내리고

 

 

눈이 내린다. 눈 속을 달리는 나는 갑자기 동화속의 주인공이 된 기분에 빠져든다. 차안이 따스하고, 옆에 앉은 가족의 손도 따스하다. 나이 들어 누리는 행복이다. 고향으로 가는 길에 눈까지 내려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먼 길 가는 길, 서둘러 나섰다. 그저께 내린 눈이 교통을 마비시켰다는 뉴스가 들린다. 또 눈발이 날리지만 그래도 가야 한다. 이 폭설이 말려도 내 가는 길을 멈추게 할 수 는 없다. 그리운 내 고향으로 가는 길이 아니냐.

 

눈 덮인 산야가 눈에 들어온다. 친구들과 산토끼 쫓던 마을 뒷산이 온통 눈이다. 썰매 타던 앞들의 논도 눈으로 덮여 있다. 동편 언덕의 소나무도 눈을 뒤집어쓰고 있다. 눈싸움하던 친구들이 동영상으로 어른거린다.

 

차에서 내렸다. 백설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내려 발아래 쌓인다. 눈에 넋이 빠져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친구들이 모여 든다. 흩어져 살다가 일 년에 단 한 번 만나는 면면이 한없이 반갑다. 눈 오는 고향에서 만난 친구들.

 

근황을 묻는다. 퇴직 후 처음으로 지은 포도농사가 대성공이라는 친구. 사진동아리에서의 재미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다는 친구. 소 값이 내려 몽땅 팔고 현재는 관망중이라는 두 친구. 자녀들을 결혼시킨 후일담에 손녀의 재롱자랑까지 합쳐지니 목청이 높아질 수밖에.

 

세월의 흔적이 재미있다. 반백으로 흩날리는 머리카락. 빠진 치아사이로 튀어나오는 웃음. 패기 있는 듯 주먹을 흔들지만 힘이 없다. 하나 같이 주름진 손마디에 검버섯 핀 얼굴. 이게 바로 나의 표정이지.

 

동네 앞 공터. 아침마다 여기 모였다가 신작로 오릿길을 걸어 학교로 갔지. 그때 그 시절 낯익은 이웃들이 얼마나 살고 있는가? 참, 이 마을엔 아이들이 몇이야? 없어! 초, 중, 고등학생이 한 명도 없단 말이야!

 

눈 내리는 고향. 아이들의 흔적이 사라진 빈 마을을 뒤로하고 헤어진다. 산야를 메우며 내리는 백설이 너무 쓸쓸하다. 누군들 없으랴. 눈 내린 고향 풍경, 그 그림 한 점 가슴에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2013.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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