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페이야기
첫날 마주친 아이는 수줍음을 많이 타는 아이 같았다. 작은 화분을 손에 든 녀석이 쭈빗거리며 사무실을 들어섰다. 자기가 직접 만든 것이라며 내민다. 받아들고 보니 정성들여 쓴 메모지가 붙어 있다.
자기는 누구이며, 이 식물의 이름은 무엇이고, 오늘 물을 준 후 2~3일은 반그늘에 둬야한다고 적은 다음, 이 화분을 잘 키워 달라는 부탁까지 덧붙여 적혀 있다. 맨 밑에는 물은 일주일에 한번만 줘야지 많이 주면 뿌리가 썩는다는 주서까지 친절하게 달아놓았다.
그 아이의 마음이 예쁘다는 생각과 함께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 선 듯 다가온다. 개인적인 일로 나를 찾은 첫 번 째 손님이어서 더 반갑다. 출근 첫날, 왠지 몸 둘 바를 모르고, 눈길 줄 곳이 마땅찮아 하는 나를 찾은 것이다. 메모지에 자기의 뜻을 솔직하게 표현한 것이 고맙고, 내 방의 출입문을 노크하고 작은 화분을 불쑥 내민 용기가 반갑다.
아이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그리고는 “언제나 문을 열어 놓았으니 가끔씩 이 화분과 눈을 맞춰주면 좋겠다. 이 화분도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아이는 눈을 바로 뜨지 못하고 아래만 내려다보며 나의 손을 잡는다.
아이를 보내놓고 화분을 내려다본다. 화분에 심겨진 이파리들이 말을 걸어오는 듯하다. 늦기 전에 물을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일어섰다. 퇴근 길 내내 부임 후 처음 탄생한 ‘페페이야기’가 가슴 속에 맴돌고 있다.
[주] 페페가 잘 자라고 있습니다.
아이가 붙여준 메모지를 떼어버리기 아까워 그냥 두고 있습니다.
아침마다 먼저 말을 걸어오면, 나도 반갑게 인사해줍니다.
우리 오늘도 잘 해보자는 무언의 다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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