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모자
요즘은 외출할 때 모자를 쓰고 나간다.
모자는 등산이나, 운동할 때 쓰는 것으로 습관이 되어 있었는데 최근 들어서는 그런 때가 아니라도 쓰고 나가는 경우가 잦다. 그것도 아무 것이나 집어 쓰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은 어떤 게 좋을까 고민하며 고른다. 어떤 옷을 입고 나갈까를 생각하는 것처럼 모자도 의상의 일부가 되었다. 거울 앞에 서서 모자 쓴 내 모습이 잘 어울리는지 비춰보기까지 한다.
사실 나는 모자와 친숙한 사람이 아니었다.
한번은 아내를 따라 백화점의 모자가게에 갔다가 가격표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렇다고 약속을 되물릴 수는 없었기에 태연한 척 하며 선택한 모자 대금을 지불했다. 내 속마음을 읽었는지 아내도 나를 보고 마음에 드는 모자를 골라 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여 가게를 나올 때는 놀란 가슴이 진정되었고, 그 날 이후로 나는 모자와 급속도로 친해지게 되었다.
얼마 전 아내가 빨간 모자를 사왔다.
처음에는 너무 야해서 쓰고 다닐 수 있을까 했는데 자꾸 들여다보니 고운색도 괜찮다는 쪽으로 생각이 굳어졌다. 이번 모임을 앞두고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빨간 모자를 쓰고 나갔다. 나만 좋으면 그만 아니냐 싶었지만 예상대로 바라보는 눈길들이 심상치 않았다. 어쩌면 빨간 모자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내 스스로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앞으로 빨간 모자를 애용할 작정이다.
평범한 것 보다는 튀는 색상이 오히려 좋다. 이것이야말로 늙지도 젊지도 않은 딱 나 같은 남자에게 너무 잘 어울리는 모자라 자부한다. 시기나 질투의 눈초리를 보내오는 친구에게 오늘 당장 아내에게 모자를 선물하라 권하고 싶다. 또 부러움의 눈길을 보내오는 사람들에게 공작이 화려한 깃을 흔들 듯이 특별히 자랑하고 싶다. 이 빨간 모자 어떠냐고-.
[2012. 9.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