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플라타너스

죽장 2012. 2. 21. 14:02

 

플라타너스


  출입문으로 들어서면서 식장의 배치며 분위기를 살폈다. 내 자리는 건너편에 있었다. 뒷벽 가까이에 자리한 학부모들은 스무 명도 넘었다. 남쪽 창을 배경으로 앉은 이들은 축하차 온 지역인사들인 듯 했다. 참석한 분들은 작은 학교의 마지막 졸업식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회 선생님께서 주인공들의 입장을 알렸다. 가슴에 붉은 리본을 단 아이들이 한 줄로 들어와서는 맨 앞줄 비어있는 의자에 착석했다. 전부가 다섯 명이었다. 그 뒤에는 꼬맹이들 14명이 세 줄로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담임선생님께서 마지막 출석을 부르는 것으로 졸업식은 시작되었다. 나도 그들의 이름 하나하나를 입속으로 따라 불렀다. 김재우! 홍태성! 성진혁! 김준홍! 장수경!

  아이들의 대답은 씩씩했다. 티 없이 맑은 목소리였다. 교장선생님께서 단상으로 오르셔서 졸업장과 상장들을 수여하였다. 뒤이어 지역의 기관 단체에서 보내온 상장과 장학금이 일일이 전하였다. 아이들은 각자의 이름이 불려질 때마다 몇 번씩이나 등단하였다. 식은 다소 지루한 감이들만큼 오래도록 계속되었지만 장내는 시종 엄숙하였다.

  아이들의 표정을 끊임없이 살폈다. 유달리 서운해 하지는 않을까 했지만 끝까지 담담한 표정이었다. 오히려 축사를 하고 단상을 내려가는 동창회장의 눈시울이 불어지는 듯하더니, 급기야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하는 졸업식 노래의 3절이 시작되자 참았던 눈물을 쏟아낸다. 사라지는 모교에 대한 감회가 아이들보다 졸업한 동창생의 가슴에 더 진하게 밀려오는 듯했다.

  학교는 동네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다. 할아버지가 졸업하고, 아버지가 이 학교를 졸업하였다. 많을 때는 한 학년에 백 명도 더되는 학생들이 다녔지만 7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64회 졸업생 5명 배출을 마지막으로 학교가 문을 닫게 되었다.

  마지막 졸업식을 마치고 나오면서 보니 교문 옆에 아름드리 플라타너스가 수문장처럼 서있다. 아이들이 떠나고 없는 빈 운동장을 지키려는 듯하다. 훗날 사람들은 플라타너스 아래 모여 이 학교가 만들어 낸 인물들을 추억하리라. 학교는 사라지고 없지만 그 자리에 스며있는 역사는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거목 플라타너스처럼-.

  우리 동네 누구는 예술계의 거목이 되었다네.

  우리 동네 누구는 불우한 이웃을 위해 큰일을 하고 있다네.

  우리 동네 누구는 고위 공직자가 되어있지.

  우리 동네 누구는 회사를 경영하여 돈을 많이 벌었다지.

  우리 동네 누구는 초등학교 선생이 되었다고 하더군. (2012.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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