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무이구곡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죽계구곡이 있다. 영주 순흥읍 동편에서 소수서원을 거쳐 배점과 초암사에 이르는 계곡을 죽계라 하고, 죽계구곡은 초암사 앞의 제1곡으로부터 죽계를 따라 내려가면서 약 5리 사이에 위치한 아홉 구비의 절경에 붙여진 이름이다. 중국의 주자가 무이산의 아홉 골짜기를 이상세계인 무릉도원이라 극찬하면서 붙인 이름이 무이구곡인 바, 그의 영향을 받아 순흥에 죽계구곡이 탄생된 듯하다.
암벽으로 쏠리는 물줄기가 수도 없이 꺾이며 절벽을 만들고, 폭포를 만들며 흘렀을 것이다. 깊은 소에 내려 꽂힌 물줄기는 수정구슬로 흩어지거나 더러는 검푸른 못 한복판의 바위에 부딪쳐 안개처럼 피어올랐을 것이다. 가히 무이구곡에 견주고도 남을 죽계구곡이다.
계곡을 타고 흐르는 초겨울 물소리가 청아하게 다가온다. 터 잡고 살던 사람들은 간 곳이 없고 한 때 경작지였음을 알리는 흔적만이 눈에 띈다. 논두렁에 돋은 나뭇가지에 얽혀 차마 아래로 굴러 내려가지 못하고 있는 돌무더기가 그것이다. 의상대사가 부석사를 지을 때 머물었다는 초암사를 뒤로하고 계속 오르니 근래 조림한 잣나무 군락이 큰 키를 자랑하며 맞아준다. 그 옆에 서있는 아름드리 소나무에 일제강점기 시대에 송진을 채취했던 흔적이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다. 봐서는 안될 것을 본 양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오늘 순흥을 감돌아 흐르는 죽계는 말이 없지만 흘러간 역사의 한 페이지에 핏물이 콸콸 흘렀음을 증언하고 있다. 단종 복위운동이 들통 나는 바람에 순흥 땅 죽계에 피바람이 불었다. 금성대군과 순흥부사 이보흠은 물론이고 순흥도호부를 중심으로 30리 지근에 살고 있는 양반들은 순흥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청다리에 끌려나와 죽임을 당했다. 이 때 죽은 사람의 피가 강물로 흘러 죽계 10여리에 닿았다고 하는 바, 그 피가 멈춘 마을이 바로 오늘의 피끝마을이라 한다.
죽계구곡으로 향한다. 금성대군이 위리안치 되었던 금성단이며, 청다리를 건너 소백산 자락길을 걷는다. 초암사를 지나 비로사를 향해 넘어가다가 발길을 멈추고 뒤돌아보면 배점저수지가 넘실거리고 있다. 산모퉁이 돌아 눈길 가는 곳 어디쯤에 피끝마을이 있을 터이다.
초겨울. 오솔길 쌓인 낙엽 아래로 살얼음을 빠져나온 맑은 물소리가 영주문화연구회의 B선생님이 토해내는 생생한 역사이야기의 배경음악으로 안성맞춤이다. 소백산을 내려오는 초겨울 바람이 차다. 겨울의 초입에 들어선 계절 때문이 아니라 한 때 역모의 땅이었던 죽계에 머물고 있는 핏빛 역사 때문이리라.(2011.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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