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가끔씩 머뭇거리며

죽장 2011. 8. 9. 13:34

가끔씩 머뭇거리며



  가끔 양쪽으로 갈라진 길 앞에서 머뭇거리고는 한다. 왼쪽길이 지름길인가, 오른쪽길이 옳은 길인가 하는 선택이 어려워서 그랬다. 한번의 선택에 만족한 경우도 있었지만, 더러는 그 선택을 두고두고 후회한 적도 있다. 모든 것을 운명에 맡겨놓고 가지 않는 한 우리 앞에는 언제나 선택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선택할 필요가 없었던 어린시절 한 때, 나는 아버지를 원망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농사일을 거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동네 어른들 대부분이 비슷했겠지만 우리 아버지가 유독 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보다는 농사일을 우선이라 생각하시는 아버지 때문에 더러는 숙제를 놓친 적도 있다. 공부를 잘하지 못한 핑계 치고는 좀 치사하지만 사실이다.

  특히 소 풀 뜯기는 일은 순전히 내 몫이었다. 학교서 돌아오면 외양간에 매여 있는 누렁소가 고개를 흔들며 아는 체를 한다. 내가 제 녀석을 몰고 들판으로 나서야 비좁은 공간에서 해방될 수가 있어서 그러리라. 싱싱하고 맛있는 풀을 배불리 뜯어먹으며 꼬리를 흔들고, 하늘을 쳐다보며 마음 놓고 고함도 질러댈 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는가. 녀석은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음이 분명하니 아마도 우리 가족 중 아버지 다음으로 나를 좋아했지 싶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는 애지중지하던 소를 읍내 우시장에 내다 팔고 중간크기의 소한마리를 사오셨다. 이 녀석은 아직 어려서인지 생각만큼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듯했다. 당장 농사일이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아버지와는 달리 나는 다소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정이 들었던 누렁소가 갑자기 이름모를 곳으로 팔려간 것이 서운했지만, 이왕지사 그렇게 된 것 새 식구와 친하게 지내야겠다고 말이다.

  하루는 아버지께서 지게에 쟁기를 짊어지고 나서며 소를 몰고 따라 오라는 것이었다. 마을 뒤에 있는 밭머리에 도착해서는 소의 잔등에 멍에를 걸어 쟁기를 결합시키셨다. 그리고는 나에게 소코뚜레를 잡고 앞을 바라보며 서라는 것이었다. 아버지께서 ‘이랴’하며 고삐를 흔들면 내가 소를 앞으로 끌어당겨야 했다. ‘워-’하면서 고삐를 당기면 내가 그 의도를 알아차리고 멈춰야 했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할만했다. 그러나 ‘어디어디’와 ‘노로노로’의 대목에서 나는 그 방향을 알 수가 없었다. 왼쪽으로 가라는 ‘어디어디’에 나는 오른쪽으로 소코뚜레를 잡아당기기도 하고 더러는 그 반대로 할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쟁기를 잡은 아버지와 소코뚜레 잡은 나의 호흡은 심각한 불일치를 보였다. 소도 문제지만 나 역시도 아버지가 소와 소통하는 언어를 즉시 알아듣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 가르치기도 어렵지만, 가축 길들이기도 오랜 세월 반복에 반복을 거듭해야 가능한 일이다. 아버지는 쟁기와 나를 통하여 그 힘든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셨다. 소 풀을 뜯기는 일은 나의 전공이었으나 소 길들이기는 명조련사 아버지의 보조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나에게 있어 쟁기는 농사꾼 아버지와 길들지 않았던 누렁소와 함께 존재한다. 길들지 않았던 소는 길들지 않았던 철부지 소년과 당연히 함께이다. 그때 아버지 쟁기의 보습은 반질거리며 윤이 났다. 평생 농사밖에 몰랐던 아버지의 쟁깃날이 지금도 내 추억 어디쯤에서 반짝거리고 있다.

  밭머리에서 ‘이놈의 소야! 왼쪽으로 가거라, 오른쪽으로 가거라’를 외치시던 아버지의 음성이 그립다. 그때 아버지는 소가 아니라 이 아들에게 사람이 가야하는 바른길을 가르치려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난 지금도 왼쪽과 오른쪽 중 어디로 방향을 틀어야 할지를 몰라 가끔씩은 머뭇거리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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