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풍물마당

죽장 2011. 7. 8. 17:54


  태평소 가락이 울려 퍼진다.

  애절한 음률은 둘러선 군중들의 가슴을 헤집는다. 일순 세상의 시계가 멈춘 듯 고요가 내려앉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상쇠가 꽹과리를 때린다. 북이며, 장고패들이 순서대로 몰려나와 어깨와 허리를 주춤거리며 신명을 낸다. 상모꾼이 몸을 옆으로 비틀어 공중잡이로 뛰어오른다. 난데없이 포수가 나타나 마당을 가로지르며 헛총질을 해단다. 도포에 정자관을 갖추고 장죽을 든 선비의 팔자걸음 뒤를 따르는 아낙네의 허리춤도 만만치 않다. ‘깨개갱’하는 꽹과리소리에 맞춰 북과 장고가 ‘둥둥두둥’ 울리고, 징소리가 연이어 뒤따르니 숨죽였던 흥이 여기저기서 일어난다. 패거리들의 재주에 탄성이 일어난다. 꽹과리, 북, 장고, 징소리가 하늘로 퍼진다.

 

  마침 쉬는 토요일이었다.

  낙동강변의 동락공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풍물대회장을 찾았다. 땡볕 아래 하늘을 찌르는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農者天下之大本』이라 적힌 깃발을 앞세우고 꽹과리, 징, 북, 장고, 상모 순으로 도열해 있다가 부지런히 앞뒤를 오가며 치는 상쇠의 꽹과리 신호에 맞춰 대열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태평소를 부는 사내는 어느 새 마이크 앞으로 다가가 서곡을 토해낸다.

 

  그들의 움직임 자체가 신명이다.

  저들의 몸놀림 하나하나에 스며있는 의미가 궁금하여 유심히 살펴보았다. 서서히 마당으로 들어선 무리들은 한 줄로 원을 그리며 돌다가 태극무늬처럼 만났다가 헤어지기도 한다. 가운데로 모여들었다가 뒷걸음질로 물러나기도 한다. 자리를 박차고 뛰어오르기도 한다. 농사로 꾸부러진 허리를 펴는 한마당 신명풀이를 비롯하여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는 잔치일까? 어쩌면 전쟁터에서 진군을 독려하거나 물러나라는 신호인지도 모른다. 더러는 돌림병이 속히 물러나기를 기원하는 주술적인 행위일 수도 있다.

 

  소리의 잔상에서 깨어나면서 생각해본다.

  낙동강이 지역을 가르며 흐르고 있다. 사람들은 강가의 비옥한 땅에 모여 농사를 짓거나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오랜 세월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소백준령을 넘어 영남으로 내닫는 지형으로 인하여 부족국가시대 때부터 동네와 나라를 뺏고 빼앗기는 싸움을 치열하게 했던 사람들이다. 고된 농경생활에서 휴식을 할 때나, 풍년을 기원할 때도 그랬을 것이고, 때로는 부족간에 전쟁을 치루면서 자연스럽게 풍물놀이가 생겨나 자리를 잡았다. 풍물은 이렇게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고 단합을 과시할 수 있는 매개체였으니, 기쁠 때는 함께 웃고, 슬플 때는 서로 부등켜안고 아픔을 달래며 살아가는 일상과 불가분의 관계로 발전하게 되었으리라.

 

  오늘따라 유난히 덥다.

  저들은 하나같이 머리에 몸체만한 고깔모자를 쓰고, 바지 저고리에 조끼까지 차려입은 위에 푸르고, 붉고, 노란 띠를 어깨로 허리로 동여맨 차림이다. 이마에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오늘 저들이 흘리는 땀은 그날 농민들이 논밭에서, 그날의 군인들이 전쟁터에서 흘린 땀방울과 다르지 않다. 아득한 옛날부터 이 지역 민초들의 몸에 굳건하게 이어져온 정신처럼 오늘 피부를 쥐어짜며 흐르는 굵은 땀방울은 우리 삶의 활력소이다. 나의 이마에서도 땀이 나기 시작한다. 내가 흘리는 땀도 저들과 다르지 않다.

 

  풍물패거리가 두드리며 뛴다. 돌고 돌린다.

  관중석에 앉아 동작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을 한다. 저들의 장단을 따라 어느 새 나의 다리가 끄덕이고 어깨가 들썩거린다. 마당 가운데서 뛰는 사람과 둘러서서 구경하는 사람의 호흡이 일치하고 있다. 저들은 서서 몸으로 뛰고 나는 앉아서 가슴으로 뛴다. 풍물마당에서 우리는 하나다.

 

  여름해가 기울고 있다.

  낙동강을 물들이고 있는 노을을 남겨놓고 일어섰다. ‘둥둥둥’ 하는 북소리와 ‘지잉’하고 울리는 징소리가 사라지지 않고 따라온다. 꽹과리소리가 귀에 박혀 멍할 뿐 다른 소리는 들리질 않는다.


[2011.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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