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운동장에서의 단상

죽장 2011. 6. 7. 10:25

운동장에서의 단상

 

  유월은 붉은 보석 줄장미를 만나는 달이다. 연두색 산천이 녹음으로 짙어지면 계절은 봄을 건너 여름의 강으로 발을 들여 놓는다. 이 무렵 운동장에서 뛰는 선수들의 어깨에 맺히는 땀방울은 건강한 삶의 보석이다. 더위로 나른해지려는 날의 활력이다.

  경남 고성의 전국소체 팬싱경기장에서의 일이다. 이길 것으로 확신했던 예선경기에서 패배한 탓에 경기장 바깥의 분위기도 묵직하기 짝이 없었다. 여기저기서 어린 선수들이 어깨를 들먹이며 훌쩍거리고 있다. 코치며 감독들도 상기된 얼굴을 들지 못하고 있다. 순간적으로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다가 다가가서 ‘괜찮아, 다음에 잘하면 되지’ 하면서 어깨를 다독였더니 갑자기 녀석들이 주저앉으며 대성통곡을 하는 것이었다.

  다음날은 거창의 탁구경기장과 창녕의 정구경기장을 찾았다. 비좁은 응원석은 학부모들로 빽빽하였다. 공이 네트를 넘어가고 넘어올 때마다 환성과 탄성이 끊이지 않는다. 점수가 엎치락뒤치락 할수록 응원석의 열기도 더해간다. 주변의 응원분위기에 도취되어서인지 나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함성을 질렀다. 우리 팀이 이기는 것으로 경기가 끝이 나자 몇몇은 펄쩍펄쩍 뛰며 부등켜 안기도 한다. 마치 결승전에서 이겨서 금메달을 목에 걸기라도 한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른 지금도 경기장에서의 열기가 아직도 식지 않고 있다. 그날의 울분과 흥분을 잊지 못하고 있을 우리 아이들에게 간절히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얘들아, 최선을 다한 경기에서 패배하게 되거든 지체하지 말고 통곡해도 좋다. 눈물이 마를 때까지 실컨 울어라.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네 볼을 적신 눈물이 마르거든 승리자에게 다가가 진심으로 축하해 줘라. 그러면서 귓속말로 속삭여 줘라. 다음에는 꼭 이기고 말 것이라고-. 또 너희가 이긴 경기에서는 기쁨을 참지 말고 하늘을 찌르며 뛰어올라라. 마른 운동장쯤이야 꺼져서 내려앉아도 상관없어. 그건 경기에서 이긴 자가 누릴 수 있는 권한이야. 환호성이 멈추게 되면 울고 있는 패자들에게 너희도 잘 했다고 다독여 해주려무나, 얘들아.’

  지고 이기는 경기를 보면서 나도 배운 것이 많다. 패자가 흘리는 눈물을 보면서 내일의 승리를 확신했고, 이긴 후 날뛰는 기쁨 앞에서 땀 흘려 노력한 보람을 보았다. 여전히 너희는 우리의 희망이고 마래라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깊은 잠을 청하고 싶다. 짙은 녹음 사이로 붉은 줄장미가 한창인 유월의 배경이 있는 꿈을 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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