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전대제 참석기
인동향교는 구미대교 동단에 위치하고 있다.
공자와 그의 제자인 맹자, 증자, 안자, 자사 등 중국 5성(五聖), 송나라 2현(二賢)인 정호, 주희, 그리고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인 설총, 최치원, 안향, 정몽주,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김인후, 이이, 성혼, 김장생, 조헌, 김집, 송시열, 송준길, 박세채 등 모두 25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이 곳은, 매년 음력 2월과 8월의 丁자가 들어가는 초일인 상정일(上丁日)에 석전대제를 봉행하고 있다. 고려 말인 1390년(공양왕 2) 황상동 어운산 아래에 창건된 후,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인해 소실(燒失)되었었고, 1601년(선조 34)에 안태동 옥산으로 이건(移建)하였으나 지반이 무너져 1634년(인조 12)에 인의동으로 이건하였다가 도심 확장으로 1988년에 현 위치로 옮겼다고 안내판에 적혀 있다. 가히 전통과 역사가 서린 곳이라는 세간의 평판에 틀림이 없다.
이 인동향교의 춘계 석전대제에 헌관으로 초대받았다.
도착하자 명륜당(明倫堂)으로 안내되었다. 넓은 대청에는 모시나 삼베 도포에 관자를 두르고 의관을 정제하신 어른들이 좌정해 계셨다. 처마 밑에 산수유가 병아리부리 같은 노란꽃잎을 내밀고 있는 삼월이지만 마룻장으로 달려드는 바람은 차가웠다. 최대한 겸손한 자세로 앞으로 나아가 넙죽 절을 올렸다. 고개를 끄덕이는가 싶더니 이내 침묵이셨다. 맑은 얼굴에 위풍이 서려있는 자태에서 고고한 선비의 모습을 쉽게 연상할 수 있었다.
이 분위기에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마치 절간에 온 새색시마냥 어색하여 곁눈질로 주변을 살펴보았다. 마당에는 제수준비를 하는 일꾼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가 하면, 젊은 유생들은 각기 복장을 갖추고 맡은 소임에 열심이었다. 어른들은 조용한 가운데서 정해진 식순을 마무리 정리하는 등 대제 준비가 진행되었다.
나도 헌관의 관복으로 갈아입었다.
옷가지 수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옆에서 도와주는 분이 계시는데도 쉽지 않았다. 어렵게 관모에 신발까지 끼고 나서 마지막으로 혁대에 구슬을 꿰고 거울 앞에 섰다. 드라마에서나 보았음직한 당당한 기풍의 사나이가 나를 보면서 겸연쩍게 서있었다.
명륜당을 나와 대성전(大成殿)으로 들어섰다.
집례자의 홀기에 따라 순서가 이어졌다. 이 석전제는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라 하니 동작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 두발을 가지런히 모으는가 하면, 잔을 받아 올리고, 절을 하는 동작들이 모두 순서에 따라야 했다. 초헌관이 향을 피우는 것을 시작으로 초헌례, 아헌례, 종헌례, 분헌례, 음복례, 철변두 등의 제례순서에 따라 고스란히 재현되었다.
일찍부터 이 지역을 일컫는 대명사가 많다.
이를테면 불교초전지라는 이름과 함께 선비와 충절의 고장이라는 이름이다. 향교에 관광차 들린 것이 아니라 석전대제 직접 참여하는 이번 기회에 그 이름의 원천을 직접 확인하게 되었다. 도포에 관을 쓰고 정좌한 유림들의 겉모습도 예사롭지 않지만 그보다 위엄과 온화함이 함께 느껴지는 눈빛과 표정이 바로 그것이다. 잔잔하면서도 간결한 대화가 그것이다. 디지털시대에 충절이란 단어로 무장된 선비를 만나고 돌아서는 가슴에 낙동강 봄바람의 향기가 안겨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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