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친구의 결석

죽장 2010. 12. 16. 14:04

 친구의 결석


  비어 있는 의자가 눈에 들어온다. 약속시간이 지났는데도 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의 전화벨이 울린다. 황급하게 통화를 시작하는 친구의 입에 시선이 쏠린다. 빈자리의 주인이 걸어온 전화인 듯 하다.

  “어디가?”

  “얼마나?”....

  내뱉는 외마디 말끝마다 어김없이 의문부호가 따라 붙는다. 전화기 뚜껑을 힘없이 덮는 친구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스쳐지나간다.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이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만나온 기간이 무려 35년이다. 까까머리 학생으로 만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병역의무를 마치고 결혼도 하였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모이는 식구들이 점점 늘어나는가 했더니, 어느 새 그 아이들이 장성하여 가정을 꾸리고 있다. 가히 한 세대가 훌쩍 지나가고 있음이다. 그렇다. 그간의 세월이 인생의 역사 자체가 아닌가.

  우리는 이따금씩 만나도 즐거웠다. 헤어져 있는 동안 각자의 일터에서 열심히 살다가도 만나기만 하면 밀린 이야기들로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그러면서 모임도 진화를 거듭했다. 대화의 주제가 부부의 문제에서 아이들의 문제로 옮겨가더니, 가족들을 한바퀴 돌아 다시 우리들 자신의 건강이며, 노후 문제에 도달해 있다. 밤새워 마시며 떠들었던 젊은 시절이 어제 같기만 한데 다들 예전 같지 않다고 푸념이다. 그래도 일년도 딱 두 번, 오늘처럼 만나는 날을 손꼽으며 기다리고는 했다.

  친구네 집 대문에 붙은 초인종을 눌렀다. 내외만 살고 있는 집이 오늘따라 허전해 보인다. 친구 부인 뒤에 엉거주춤 서있는 사람의 몰골이 영 아니다. 어쩌면 내가 살고 있는 모습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누군들 건강을 장담할 수 있으랴. 친구를 보면 내 모습을 알 수 있다는 말이 현실감 있게 달려든다.


  우리 우정의 세월 수 십 년.

  희끗희끗한 저 머리카락 보게나.

  나이 들어도 웃음을 잃어서는 안돼.

  암, 건강해야하고 말고.

  이 사람, 결석이라니.

  어서 자리 떨고 나오게나.


  친구가 결석을 했다. 학교 다닐 때는 더러 결석도 했었지만 졸업 후 우리 모임의 사전에 결석은 없었다. 친구의 결석이라는 유사 이래 첫 사건을 앞에 두고 잠시 깊은 상념에 젖는다. 큼지막한 바윗돌 하나가 내 가슴을 향해 굴러오고 있다.

(201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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