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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 사망

죽장 2011. 10. 6. 16:40

 

1980년대 PC(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열었던 '애플2' 컴퓨터, 세계인들의 음악감상 방식을 바꿔놓은 아이팟, 단순히 음성만 주고받는 기기였던 휴대폰의 개념을 ‘손안의 PC’로 변화시킨 아이폰, 책상에 앉지 않고도 편안하게 컴퓨팅을 즐길 수 있게 만든 아이패드….
 
이 모든 것을 창조했던 ‘미국 IT산업의 상징’, 스티브 잡스애플 CEO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5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애플은 이를 5일(현지 시각) 공식 발표했다. 애플은 이사회 명의의 성명서에서 “애통한 마음으로 스티브 잡스가 오늘 사망했음을 알린다”고 발표했다. 애플은 “스티브의 영명함과 열정, 에너지가 멈추지 않는 혁신의 원천이 됐으며 이로 인해 우리의 인생은 풍부해지고 향상됐다. 스티브로 인해 이 세상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개선됐다”고 덧붙였다.
 
업계에서는 잡스를 ‘혁신의 제왕’이라 불렀다. 실제로 그는 컴퓨팅의 세계와 음악의 세계, 통신의 세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작년 12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잡스를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으로 지목하면서 “우리는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을 찬양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잡스와 함께 애플을 공동창업한 워즈니악과 애플의 경쟁사인 구글의 CEO를 역임한 에릭 슈미트는 잡스가 CEO 자리에서 물러날 때 “이 시대 최고의 CEO”라고 칭송했었다.
 
잡스는 지난 195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미혼모인 조앤 캐럴 쉬블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시리아 태생의 아랍인이다. 그는 지난 2005년 미국 스탠퍼드대학 졸업식장에 등장, 자신의 출생 비밀을 직접 털어놓아 화제를 모으기도 했었다.
 
잡스는 어린 시절의 친구였던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1976년 애플컴퓨터를 공동 창업한 뒤 ‘세계 최초의 PC(개인용 컴퓨터)’로 통하는 애플2를 시장에 냈다. 애플2는 ‘컴퓨터=IBM’이란 공식을 깨뜨리며 돌풍을 일으켰고, 그는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잡스의 인생은 부침(浮沈)이 심했다. 1985년, 그는 자신이 영입했던 펩시 CEO 출신 존 스컬리와 마찰을 빚은 끝에 자신의 회사에서 쫓겨나는 망신을 당한다. 잡스는 이후 넥스트 컴퓨터라는 회사를 창업했고, 루카스필름의 컴퓨터그래픽 사업부문(현재 픽사)을 사들였다.
 
오늘날 업계에서는 잡스가 이 시기에 ‘콘텐츠의 중요성’을 절감했으며, 그 결과 누구나 손쉽게 응용프로그램을 만들어 올리고 내려받을 수 있는 ‘앱스토어’를 구상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아이폰·아이패드 등 애플 제품의 압도적인 경쟁력은 기기 자체가 아닌, 그 이면에 자리 잡은 수십만개의 콘텐츠 풀(pool)에서 나온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7년 적자와 파산 위기에 몰린 애플의 CEO로 귀환한 잡스는 그간의 구상을 현실로 만들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 아이팟(MP3플레이어), 아이튠스(음악프로그램) 등을 내놓으면서 소니 워크맨을 역사의 뒤안길로 보냈다. 2007년에는 ‘아이폰’을 내놓으면서 전 세계에 스마트폰 혁명을 불러왔다. 이어 지난해 태블릿PC ‘아이패드’를 선보이면서 휴대폰에 이어 PC시장의 판을 뒤흔들어놨다.
 
하지만 왕성한 활동에도 그의 발목을 붙잡는 것은 바로 ‘건강’이었다. 지난 2004년 췌장암 수술을 받았고 2009년에는 간 이식 수술대에 오르면서 회사를 잠시 떠나있기도 했다. 올 1월에는 무기한 병가에 들어갔다. CEO 사퇴까지 7개월 동안 아이패드2 발표회와 애플의 신사옥 계획발표, 세계개발자대회 등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건재를 과시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수척해지는 그의 모습에서 분명히 건강악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5일, 그는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잡스의 유족들은 이날 성명을 통해 “스티브가 오늘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유족으로는 부인 로렌과 3자녀가 있으며, 로렌과의 결혼에 앞선 전처와의 사이에도 딸이 하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