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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늘어나는 비정규직 理工系 연구원

죽장 2011. 9. 30. 09:59

[2011.9.30, 조선일보 아침논단]

점점 늘어나는 비정규직 理工系 연구원

양윤선 메디포스트 대표이사

명문 사립대 화학과 A 교수는 길고 험난한 경쟁을 뚫고 해외에서 귀국해 대학에 자리를 잡았으나 늘 걱정이 많다. 초기에 아무것도 없는 연구실 정비를 위해 빚을 졌고, 최근에는 자녀 사교육비 충당을 위해 다시 부모 도움까지 받게 됐다. 대덕연구단지에서도 엘리트로 꼽히는 B 연구원은 이곳 연구원들의 자녀가 부모에게 반항하는 주요 방법 중 하나가 "아버지처럼 과학자가 되겠다"고 말하는 것이라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제7위의 수출국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반도체와 정보통신 기기, 선박과 자동차 등 이공계 기반의 산업 분야에서 이뤄낸 성과 덕분이다. 또 미래의 신(新)성장동력 산업으로 꼽히는 신재생에너지, 바이오 제약, 콘텐츠·소프트웨어 등도 이공계 인재들이 주축이 되어 끌고 가야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우리나라 인재들이 이공계를 거부하고 이탈하는 현상이 계속된다면 자칫 국가의 산업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미래의 산업 경쟁력을 이끌어 갈 원동력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공계의 인재 부족 현상은 단지 특정 전공 분야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큰 범주에서 바라봐야 한다.

이공계 기피 현상 해결 방안으로 의·치대 정원을 크게 늘려 의사라는 직업의 수익성을 낮추면 인재가 어느 정도 분산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을 것이다. 이공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의·치대 쏠림 현상을 더 심화시킨 것일 뿐, 이공계 기피 현상은 이공계 자체의 문제에서 기인한 것이므로 해결 방법도 거기서 시작돼야 한다.

이공계를 선택하는 인재들에게 부(富)와 명예를 포기하고 순수하게 연구에만 매진해 달라고 호소하는 것은 이제 더는 유효하지 않다. 현재 정부와 각종 기관이 추진하고 있는 이공계 우대 캠페인과 정책도 일부 도움은 되겠지만, 더 큰 부와 명예를 꿈꾸는 젊은이들의 발걸음을 이공계로 돌려세우기에는 역부족이다.

우선 국·공립 연구소는 더 많은 정규직 일자리를 만들고 좋은 대우를 해줘야 한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는 비정규직인 연구원이 늘어나고 있어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최근 국회 조사로는 '공공기관 선진화'를 추진하면서 예산상 이유로 정부 출연 연구기관들의 연구원 급여가 크게 줄고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 연구원이 늘어나고 있어, 좀 더 안정적인 연구 환경 조성이 시급한 실정이다. 다행히 얼마 전 정부가 내놓은 '산업인력 육성관리 시스템 혁신 방안'에는 고용 계약형 석사 채용 지원, 연구 지원 전문가 제도 도입, 대학의 전담 연구직 확대 등 예전보다 한결 구체적인 지원책이 담겨 있어 지켜볼 만하다.

여기에 덧붙여 좀 더 실질적인 경제적 보상 제도도 마련돼야 한다. 해외에서 귀국하는 연구원들이 국내에 연구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초기 자금 지원과 정주 여건 조성은 물론, 그들의 지적재산권을 보장하고 연구 성과에 따른 부가가치가 기업이 아니라 연구원 본인에게 많은 부분 환원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또한 대학과 연계해 이공계 장학 제도 확대, 졸업 후 취업 및 창업 연결 등 실질적인 지원책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산업 발전의 틀 안에서 이공계 인재들이 견고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는 새로운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강한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이 성장하고 번성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산업계에서는 이공계 인재 부족 대책을 정부에만 기대할 것이 아니라, 기업끼리 힘을 합쳐서 실질적인 대안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대학에서 산업에 바로 투입될 수 있는 교육을 못 하고 있다고 비난하기보다는, 산업계에서 스스로 이공계 인재에 대한 창조적인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기술 자체보다 자기가 하는 일의 의미와 재미를 느끼는 방법을 가르친다면 그들이 종사하는 분야를 쉽게 떠나지 않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인문학과의 융합 교육, 각 산업 특성에 맞는 성공 및 실패 사례 전수, 기업 맞춤형 협력 강화 등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공계 인재들이 자부심과 장인 정신을 잃지 않고 오랫동안 우리의 산업역군(役軍)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획기적인 정책과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일은 우리 미래 삶의 질을 결정하는 문제이니만큼 좀 더 파격적이고 강력하게 추진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