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생각

'명문가의 장수 비결'

죽장 2011. 2. 12. 11:21

[퍼온 글 : 2010.2.12, 조선일보 재편집]

                      '명문가의 장수 비결'

                                                                         저자 정지천

 

노론(老論)의 우두머리였던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은 여든세 살에 명을 달리했다.

숙종이 내린 사약을 마시고서였다.

첫 사발을 마셨을 때 끄떡도 하지 않아 세 사발이나 마시고서야 비로소 숨을 거뒀다.

우암은 평소 엄동설한에도 추위를 모를 정도로 원기 왕성했다.

임금의 노여움을 사지 않았더라면 백수(白壽)를 누렸을지도 모른다. 비결은?

"우암은 매일 어린아이의 소변을 받아마셨다"

'요료법(尿療法)'을 실행하고 있었다'

"한의학에서는 어린아이의 소변이 화기(火氣)를 내리고 어혈을 풀어주는 것으로 보는데,

의학에 밝았던 우암은 이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소변에는 면역기능을 강화시키는 물질이 포함돼 있다. "

조선 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은 어릴 때 몸이 약했다.

열 살이 될 때까지 글을 배울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여든세 살까지 살았다.

그의 건강 비결은 소식(小食)과 콩을 이용한 단백질 섭취.

"경화세족들의 사치 풍조를 비판했던 성호는 친척들을 모아

콩죽·콩장·콩나물 등 콩으로 만든 음식을 먹으며

절식(節食)하는 모임인 '삼두회(三豆會)'를 조직했다"

해학과 기지가 뛰어났던 백사 이항복의 장수 요인은 유머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를 가지는 생활 태도는 면역기능을 강화시킨다"

"백사의 가문이 백사 이래 10명의 정승을 배출하고,

우당(友堂) 이회영 등 독립운동가들을 낳은 명문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낙천적인 집안 분위기가 큰 원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 교수는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의원을 능가할 정도로 의학 공부를 했다"고 말했다.

'부모로부터 받은 몸을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에게

몸이 아픈 것은 죄악이었기 때문이다.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는 부모가 병들었을 때

자식이 직접 고치지 못하고 남의 손에 맡기는 것도 불효."라 여겼다.

"우리 조상들은 자신의 체질을 잘 알고 있었고

그에 맞는 음식을 섭취하며 건강을 다스렸다"면서"

몸에 좋다면 덮어놓고 건강식품을 섭취하는 현대인들이

조상들의 태도를 본받았으면 하는 마음이다"고 했다.

'보통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달빛  (0) 2011.02.22
뱃짱  (0) 2011.02.21
애기똥풀  (0) 2011.02.09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퍼온 글]  (0) 2011.02.06
시간과 함께  (0) 2010.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