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고향

죽장 2010. 5. 18. 15:30

고  향



  스승의 날을 맞아 모교를 찾았다.

  은사님의 가르침을 새기며 은혜에 고마움을 표시하는 날이지만, 나는 고향의 후배들을 생각했다. 멋진 인생을 설계하고 완성품으로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밴쿠버의 피겨여왕 김연아. 맨체스트 유나이티드의 골잡이 박지성. 히말라야 14좌를 모조리 밟은 오은선, 컴퓨터바이러스의 천적 안철수, 한국의 스필버그 봉준호. 지구촌을 놀라게 한 비보이들... 누구라도 좋다. 자신의 적성과 소질에 부합하는 인물 하나를 골라 목표로 삼아야 한다. 네 인생의 목표는 무엇이며 너의 모델은 누구냐’고 물었다.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주는 후배들이 한없이 고마웠다.


  태어나 자란 마을로 향했다.

  학교에서 걸어 반시간 이내에 도착하는 길이지만 기억 속의 풍경은 어디에도 없었다. 장작실은 소달구지가 도착한 장터에는 국밥 끓는 냄새가 진동했던 곳,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내닫는 자동차를 죽어라 뒤쫓던 신작로가 아니었다. 보리밭 푸른 물결 위로 아지랑이 가물거리고, 완두콩 이랑으로 나비 날던 오월의 들판이 아니었다. 흘러내린 콧물 자욱이 선명한 아이들이며, 담뱃대를 꿰어 차고 골목을 빠져나오던 어른들의 모습은 그림자조차 보이질 않는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자라고 있는 동산 숨바꼭질하던 언덕에는 빛바랜 추억의 그림자만이 가물거리고 있었다.


  고향에 대한 갈증으로 늘 목이 말랐다.

  부모님과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의 저변에는 오직 고향이 있었다. 오늘 내가 사람 노릇하며 밥 먹고 살아가고 있음도 그저 고향의 은덕이려니 했다. 그리하여 고향에 터를 잡고 꿈에서나 만나던 정다운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결코 넘을 수 없는 현실의 벽 앞에서도 그 곳 고향은 희망의 땅이었다. 사람들에게 부대끼다가 더러는 절망했던 날도 고향 어른들, 친구들은 내 용기의 원천이었다. 그런데 어쩌랴. 오늘은 어떤 풍경도, 어떤  사람도 살갑게 다가와 손 내밀지 않는다. 이 낯선 대지가 그토록 마음에 그리었던 곳이란 말인가.


  고향마을 앞에서 생각에 젖는다.

  인간의 미래는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훗날 이루고 싶은 하나의 모델을 정해놓고 그를 향해 열심히 노력하면 꿈은 반드시 현실이 된다고 강조했던 좀 전의 언어를 곱씹어 본다. 미래를 살아갈 젊은이들에게 여전히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이기는 자만이 살아남는 경쟁사회에서도 고향이라는 제목의 풍경화 한 폭쯤은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뒤돌아 보건데 낭만의 젊은 시절을 동경함은 한낱 사치가 아니라 육신의 피로를 풀어주는 비타민이다. 고향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에 힘이 솟는다.


[2010.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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