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산마늘

죽장 2010. 4. 27. 17:12

 


  꽃 피는 사월이다.

  산천이 푸름으로 깨어나는 사월은 신이 인간에게 주는 행복주간이다. 그 중에서도 바람 잔잔하고 햇살 맑은 사월은 복 받은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행운이다. 지난 일요일은 나에게 행복과 행운이 겹쳐 찾아온 날이었다. 찬 겨울을 나면서는 강물이 풀리는 봄이 오면 가리라 다짐했지만 막상 털고 나서는 일이 쉽지를 않았다. 그렇게 벼루었던 나들이를 가족과 함께 실행하였다. 목적지는 포항 청하에 있는 『K식물원』

 

  포항까지의 고속도로가 시원하다.

  오락가락하는 황사예보는 잊혀지고 마침내 삭막한 도회지 풍경에 함몰되어 있던 오감이 살아났다. 눈에 들어오는 것 모두가 기쁨과 활력으로 충만해 있다. 메마른 나뭇가지를 헤치고 뾰족하게 돋아나고 있는 이파리들은 하나같이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복사꽃이 한창인 뒷산 언덕에 간간히 섞여 핀 산벚꽃이 구름 같다. 연두빛으로 변해가는 산천이 오래 잊고 살았던 추억의 색깔로 스쳐간다.

 

  오장육부 형상을 하고 있는 식물원 탐방로.

  온갖 풀과 꽃, 나무들이 인공미를 배제한 채 평지, 언덕, 돌 틈, 물 속을 가리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자라고 있다. 노랑할미꽃이 곱다. 향기가 좋거나 향수에 젖게하는 식물들이 자라는 코너도 있다. 산마늘(명이나물)을 비롯하여 울릉도에 자생하는 식물들을 모두 볼 수 있었고, 독도 형상을 한 바위도 있다. 용연지에는 여전히 두 마리의 용이 어우러져 있는데, 수련은 아직 철이 이르다.

 

  나무들에 대하여 너무 모르고 살았다.

  낙우송의 호흡근이 이채롭고, 낙우송과 메타세퀴아가 어떻게 다른지도 알았다. 주변의 산에 지천으로 자라고 있는 나무들이 멋진 관상수가 되기까지는 의식 있는 사람들의 수고가 많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 뿐 아니라 ‘미스김 라일락’처럼 몰래 해외로 반출된 우리 나무가 국적을 바꿔 수입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라 한다. 약초로 쓰이는 나무를 개발하고 가꾸는 일과 함께 멸종위기의 식물들을 보호하는 일의 중요함이 새삼스럽게 피부에 닿는다.

 

  하늘 가득 봄날의 황혼이 다가선다.

  식물들에 도취되어 넋을 놓고 있는 사이 시간이 그렇게 지나갔다. 잔디광장에 울려 퍼지는 섹스폰 소리가 하늘로 퍼지고 있다. 서둘러 나가니 막걸리 주전자를 옆에 두고 기다리는 분이 계신다. 40년간 이 식물원을 가꿔온 원장님이다. 목을 젖혀 꿀꺽꿀꺽 마시고는 갓 뜯어온 산마늘을 초고추장에 푹 찍어 먹었다. 맵사한 느낌과 막걸리와의 조화가 기막히다.

 

  산마늘 화분을 들고 나왔다.

  막걸리에 산마늘 맛이 생각나면 이파리를 하나씩 뜯어 먹으면 되리라. 그러다가 아무래도 오늘 같은 감흥이 일지 않으면 이 식물원으로 달려오면 될 터. 덤으로 얻어 마신 막걸리 때문인지 돌아오는 길이 너무 멋졌다. 행복과 행운이 겹친 날. 내 생애에 이런 날이 또 언제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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