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젊은 날의 궁핍

죽장 2010. 7. 7. 18:03

젊은 날의 궁핍



  올해 따라 여름 더위가 유난하다. 날씨 탓인지, 무료한 일상 때문인지 문득 어렵고 힘들었던 젊은 시절이 떠오른다. 그 무렵을 한 단어로 표현하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궁핍’을 내세우고 싶다. 당시는 나와 내 이웃이 모두 그랬으니 그냥 한 토막의 추억쯤으로 회상되는 궁핍일 수도 있으리라.

  부모님은 손바닥만한 밭떼기 하나 물려받지 않은 채 오로지 근면과 절약으로 집안을 일으켰다. 무학의 아버지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내가 중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일찍 외지로 나간 마을 청년들이 훗날 세탁소, 이발관, 자전거방의 주인이 되어 있었음에 아버지의 머릿속에는 그들이 바로 출세의 표본이었다. 그러니 진학하는 것보다 일찍부터 도회지로 나가 돈버는 길로 나서라 닦달하는 것이 무리는 아니었다.

  중학교 졸업이 다가오자 아버지는 또 고등학교 진학을 가로막으셨다. 나는 식음을 전폐하고 산으로 들로 나돌아 다니며 시위를 했다. 급기야 아버지보다 세상 물정을 더 모르는 어머니가 오로지 자식사랑을 무기로 들고 나섰다. ‘낙방할 것이 분명하니 일단 응시라도 시켜 소원을 풀도록 해줘야지, 자칫하다가는 미쳐나갈까 걱정’이라며 아버지를 설득하였다.

  불행하게도 입학시험에 덜컹 붙고 말았다. 향토장학금이 지원될 리 만무했으니, 입학부터 졸업까지 매 분기 공납금 고지서가 나올 때마다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졸업과 동시에 나의 진로는 자동으로 정해져 있었다. 일단 취직하여 대학 등록금을 벌어야 했고, 그 후 야간대학에 입학하여 주경야독을 실현하는 코스였다. 이 때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의 6년간이 내 궁핍 인생의 초절정기였다.

  수개월간 라면으로 끼니를 떼우면서도 삶이 구차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불 속에 둥지를 틀고 있는 이를 잡아 잉크병을 가득 채우는 게으름으로 삶의 바닥을 헤매면서도 인생은 본시 이런 것이려니 했다. 학비 조달의 한계상황에서 돌파구는 휴학이었다. 어렵게 복학을 하여 가까스로 졸업하는 바로 그 다음 날 신병훈련소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일상사에 적극성도 없고 융통성도 없다. 그냥 묵묵히 참아 견디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할 뿐 현상 타개를 위해 몸부림치는 용기도 없다. 그런데 기특한 것은 좌절하여 포기하거나 함몰되어 주저앉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정된 운명에 순응하여 가파른 고갯길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딛었다. 그 발걸음 속에는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어떤 힘이 있었는지 모른다.


    그 힘의 정체가 무엇일까?

    평생 땅만 파다 돌아가신 아버지로부터 유전된 신념일까.

    열여섯에 시집와 칠남매를 키운 어머니의 눈물이었을까?

    유전도 아니고 눈물도 아니라면

    내 혈관에 돌연변이로 흐르고 있는 투박한 촌놈기질이란 말인가.

    아니, 어쩌면 양지바른 뒷산에 언덕에 자리 잡은 조상의 묘에

    오늘도 피어오르고 있는 신비의 지기(地氣)의 영향인가.

    아버지! 오늘 이 자식의 불경을 용서해 주십시오.


  걸어온 길을 뒤돌아본다. 출발선 부근의 풍경은 전쟁으로 얼룩진 상처투성이에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고는 들꽃 한 송이 피어있지 않은 황무지뿐이었다. 눈물바람을 쐬면서도 세월의 강물은 쉬지 않고 흘렀다. 유장한 흐름은 이제 반환점을 돌아 종착점을 향해 내닫고 있다. 젊은 시절의 회상이 한줄기 바람으로 다가와 흐르는 땀을 식혀준다. 궁핍의 세월을 거슬러온 시원함이다. (201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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