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봄풍경 하나

죽장 2010. 4. 20. 17:39

봄풍경 하나



  성주 선남면에 위치한 사회복지법인『W집』으로 가는 길. 때는 4월도 중순인지라 대구를 벗어나자 만발한 벚꽃이 신작로 양편에 구름같이 늘어서서 마중한다. 낮은 언덕배기에는 하얀 조팝나무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봄이 한창이다.

 

  자주 가볼 수 없는 곳인지라 기대가 컸다. 도처에 깔린 봄 향기를 만끽하며 신명나게 달려가노라니 갑자기 온통 골짜기를 가득 메우고 있는 공원묘지가 다가선다. 목적지『W집』은 이 공원묘지를 지나 산꼭대기에 솟아 있고, 길은 묘지 한가운데로 나있다. 마치 하늘로 오르는 길 같다.

 

 골짜기며, 산등성이를 메우고 있는 묘지의 수가 천인지, 만인지 모를 지경이다. 모양이며 넓이가 꼭 같지 않은 걸 보니 천국에도 돈의 가치가 작용하는가 보다. 계단을 따라 가지런히 자리 잡은 봉분 앞 묘뜰. 그 묘를 지키고 있는 차가운 빗돌. 언제 꽂아 둔 것인지 알 수 없는 조화가 정물화로 그려진 풍경이다. 살아 움직이는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봄 햇살도 조용할 수밖에.

 

  정상에 오르자 나란히 자리 잡고 있는 양로원과 요양원 건물이 앞을 가로막는다. 노인들 몇 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만 별 말이 없고 움직임도 조용조용하다. 건물 안에서 곱게 늙은 노부부가 나들이라도 가려는지 다정스레 나오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뭔가를 묻는다. 조금 떨어진 거리라 분명치는 않지만 대답하는 말투가 다분히 사무적이다. 유료 양노원이라 했는데.

 

  눈 아래 펼쳐져 있는 공원묘지와 양로원의 주인공인 노인들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노인들은 무엇을 보면서 살고 있을까?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아갈까? 젊은 시절의 추억을 그리워하고 있을까? 보고 싶은 가족들의 얼굴을 그리고 있을까? 제비꽃, 냉이꽃 가득한 저 공원 어디쯤에 묻힐 날을 손꼽고 있을까? 인적도 끓어진 산비탈, 조팝나무 꽃그늘이 봄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계절에 왠지 모를 서글픔이 다가선다. 좀 전에 빗돌을 넘어 날

아간 나비 한 마리의 잔상이 머물고 있다. 머릿속이 띵한 건 봄 햇살 때문인가.

 

[베란다에 한창인 황금마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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