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생일 서정

죽장 2010. 2. 10. 18:50

형제자매들이 모두 모였다.

고향 가까운 시골에 살고 계시는 누님 두 분을 비롯하여

형수님 세분에 동생까지 해서

7남매가 빠짐없이 한자리에 모이는 사상 초유의 상황이었다.

물론 이 세상에 계시지 않은 형님들의 자리는 형수님들이 대신 차지하셨다.

 

한 지붕 아래서 태어나 자랐지만 시집가고 장가들면서 각자 흩어져 살고 있다.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이나 어쩌다 있는 집안의 대소사에도

사정이 있는 누군가는 불참할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의 삶이다.

한자리에 모이지도 않고 편지도 하지 않는다.

안부 전화 한 통화 하지 않고 살아도 별다른 불편함이 없다.

이렇게 살고 있는 우리를 향해

인정머리 없는 가족이라 손가락질을 한다 해도 할 말은 없다.

 

큰누님은 여든이 넘은 고령이다.

말수가 적고 표정까지 조용하여 마치 살아생전의 어머니와 마주 앉은 듯하다.

작은 누님은 활달한 성격이시다.

어린 나를 업어 키웠다는 자랑은 오늘까지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른다.

서울서 오신 형수님은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시집왔으니

사춘기 무렵의 부끄러운 자화상까지도 기억하는 분이다.

 

공감의 폭은 넓고 깊어 마치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과 같다.

고향에서의 추억과 어린 시절의 동심이 좌중의 마음을 가로질러 흐른다.

가난했던 시절의 애환이 성큼 다가오면서 참았던 감정의 둑이 무너진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언제 한번 각박했던 속내를 털어놓을 기회가 있었던가.

시집살이가 어려웠다는 누님이며,

때로는 시부모가 원망스럽기도 했다는 형수님의 말씀을

묵묵히 들을 수밖에 없었다.

 

반가운 만남일수록 빨리 흐르는 것이 시간이다.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해지는 나이를 지나

깊게 패인 주름이 삶의 역사를 증명하는 날에도

이별의 시간은 예외 없이 쾌속으로 다가왔다.

이 자리에서 일어서면 각자의 보금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인가.

 

누님은 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

형수님은 돌아서면서 눈물을 훔치신다.

안녕히 가시라는 작별인사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지를 않는다.

예순 번 째 맞는 내 생일날의 안타까운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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