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감천강에서 꾸는 꿈

죽장 2009. 8. 4. 17:17

  유럽여행에서 흔히 들리는 곳이 프랑스 파리 시내를 동서로 관통해 흐르는 세느강이다. 세느강 강변에는 노트르담 대성당을 비롯하여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즐비하다. 에펠탑이 만국박람회를 기념하여 만들어진 근대화의 상징이라면 세느강은 파리를 낭만의 도시가 되게 하였다.

 

  노트르담 성당의 웅장하고 화려한 조각들을 보면서 곱추 콰지모도는 어디쯤 있었을까를 생각했었다. 퐁네프다리를 향해 걸어가는 나에게 슬며시 다가와 자기가 그린 그림을 펼쳐보이던 젊은 화가의 덥수룩한 수염도 생각난다. 강물이 그렇게 맑았다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세느강과 조화된 강변의 풍경들은 세계인들이 즐겨찾는 낭만의 본고장으로 손색이 없는 곳이다.

 

  파리에 세느강이 있다면 선산에는 내 소년 시절 꿈을 키우며 살았던 감천강이 있다. 이 감천강을 한국의 세느강으로 만들었으면 하는 것이 내 소망이다. 최근 낙동강 살리기 프로젝터가 착착 진행 중이니, 이 참에 낙동강 지류인 감천강을 진정 감천강답게 만들고 싶다. 감천강에는 파리를 찾는 사람들의 세느강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

 

  감천강!

  멀리 고려 태조 왕건과 후백제 견훤의 역사가 서려있고, 가깝게는 참담했던 한국전쟁 6·25의 피눈물이 흘렀던 강이다. 한민족의 정서에 폭넓은 공감대를 가지고 있는 선비정신과 충절의 표상으로 삼기에 충분한 곳이다. 불교가 처음 자리 잡은 현장일 뿐 아니라 인근에는 또 의구총, 의우총이 있어 짐승과 사람에 읽힌 따스한 이야기도 전해온다. 이들을 바탕으로 역사와·문화가 살아있는 강으로 변모시키기만 하면 감천강도 세느강 못지않은 관광지가 되리라 믿는다.

 

  몇 년 전 브뤼셀 골목을 헤매다가 가까스로 건물 귀퉁이에 자리 잡고 있는 길이 50㎝의 동상 오줌 싸는 그 소년을 보고는 실망했던 기억이 새롭다. 코펜하겐의 80㎝의 인어상은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에서 동기를 얻어 만들어진 관광 명소이다. 작은 이야기의 가치를 상품화 시키고, 이를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게 한 것이 사연의 전부이다.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데는 문화마인드가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문화는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아끼는 사람들이 만들어가야 한다. 이효석과 메밀꽃 하나만으로도 해마다 관광객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강원도 봉평이 그 한 예이다. 유구한 역사와 자랑스러운 민족정신이 깃들어 있는 감천강을 세계인들이 즐겨찾는 세느강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오줌싸는 소년이나 인어공주를 보려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감천강으로 돌릴 수는 없을까? 오늘 말없이 흐르고 있는 감천강으로 달려가 해답을 구해봐야겠다. (2009.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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