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감천강」 그 후

죽장 2009. 7. 18. 15:22

수필가 견일영은 작품 「감천강」에서

‘할아버지 앞에서 나를 한 번도 안아주지 못했던 어머니의 한이

하얀 모래 위에 아지랑이로 피어오르는 것만 같다’고 했다.

보이지 않는 관습의 틀은 이산으로 살던 모자의 해후에도 말로 다 못할 안타까움을 남겼다.

오래 헤어져 있던 자식을 덥석 안을 수 없는 어머니의 애절한 마음이 여과 없이 전달되어 온다.

뒤집어 보면 어머니가 보고 싶었던 자식의 마음도 그보다 컸으면 컸지 결코 작지는 않을 것이기에

한이 되어 모래 위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로 느껴지는 착시현상, 또는 환각현상은

어머니의 마음이 아니라 작가 견일영 수필가의 한이라 생각한다.

‘목탄 냄새를 풍기며 천천히 지나가는 버스 안에 혹시 어머니가 타고 있는가 싶어

그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뽀얀 먼지를 뒤집어 쓴 신작로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표현이 웅변하고 있다.

지난 한 시대의 할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자식의 관계를 그린 풍속화 한폭이다.

 

얼마 전, 시집간 딸 내외가 아들을 안고 친정에 왔다.

이들 젊은 부부가 다 같이 아이를 얼르고 주무르는데 일말의 주저함이 없다.

내 속내가 미세하게 동요하고 있음을 알아차린 아내가 선수를 치고 나온다.

‘지 새끼 좋아하는 꼴이 보기 좋지 않으냐’며 옆구리를 쑤시는 바람에 나도 따라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부모 앞에서 자식을 안는 일에 눈치를 보던 사람이 아니었다.

이보다 더 기막힌 일이 있었다.

딸아이가 이사해간 아파트를 방문했을 때,

아내는 현관으로 들어서면서 갑자기 일당을 받고 불려온 일꾼으로 돌변하는 것이었다.

집안 구석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는 쓰레기를 정리하여 내다버리는가 하면,

냉장고를 열어 버릴 것과 두고 먹을 것을 구분하여 정리하는데 정신이 없다.

드디어는 ‘이게 뭐야’ 하는 탄성과 함께 내용물을 죄다 꺼내어놓고 구석구석을 씻고 닦는 것이었다.

 

그날 집안 대청소를 마친 모녀는 강부자가 주연으로 나오는 연극 「친정엄마와  2박3일」을 보고 들어왔다.

세상살이의 고단이 견고한 강둑 안에 잠재되어 있다가

모녀의 가슴팍이 맞닿은 순간 허물어지면서 참았던 눈물이 강을 이룬

연극 속의 모녀에 한참동안이나 도취되어 있는 듯했다.

엄마와 딸의 진솔한 소통이 오늘을 살고 있는 관객의 공감을 사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감천강」은

어른 앞에서 귀여운 자식을 등에 업거나 가슴에 품어 안는 일이 금기시되었던 지난 시대의 이야기이다.

이 「감천강」을 출발하여

외갓집에 온 외손자와 놀다가

이사간 딸네집의 냉장고를 청소한 후

「친정엄마와  2박3일」을 보내기까지 시공을 초월하여 관통하고 있는 메시지가 있다.

부모와 자식이 보이지 않는 굴레에 속박되어 살았던 그때도 사랑의 강물은 가슴 깊은 곳에서 말없이 흘렀고,

현대를 살고 있는 모녀가 진정으로 소통하는 모습 역시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 그 자체라는 사실이다.

자식을 아끼고 사랑함에 있어 예전의 엄마와 지금의 엄마가 다르지 않다.

굳이 차이를 밝히자면 전에는 속으로 앓을 지언정 겉으로 표현하기를 자제했지만

요즘은 표현에 있어 어떤 구속도 받지 않고 있다.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사랑의 실체가 세월이 흐르면서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었다고 할까.

(2009.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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