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에서 얻은 두덩이 행복
최근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의성, 안동을 거쳐 문경까지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용무를 마치고 출발지점 대구로 돌아올 때는 중부내륙고속도로를 이용하지 않고
상주에서 낙동강을 따라오는 국도를 택했다.
안동댐에서 수위를 조절하고 있는 탓에 강물이 적당하게 흐르고 있었다.
지루한 장마 사이로 비치는 하늘이 곱고, 들판에는 벼들의 푸른 파도가 시원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다행히도 다른 지방과는 달리 장마로 인한 피해가 크게 없는지라
역시 복 받은 땅이 분명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이 더욱 즐거웠던 것은 만발한 연꽃을 만나면서 부터이다.
신라시대에 조성되었다는 해평의 연지에 홍련, 백련이 만발해 있었다.
하늘과 땅 사이를 가득 메운 연향이 신작로를 달리는 자동차에 까지 번져왔다.
1300리 긴 줄기를 이루며 흐르는 낙동강.
4대강 살리기의 중심인 낙동강 프로젝터가
경북권에 미치는 생산유발효과는 10조4800억원, 취업유발효과는 9만7600명에 이를 것이라 한다.
그러나 이런 수치상으로 확인되는 화려함보다는
그 옛날 부산에서 강을 거슬러 올라온 황포돛배가 안동에 해산물과 소금을 내려놓고
내륙의 생산물인 쌀이나 안동포를 다시 싣고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는
서민들의 생활 모습이 훨씬 쉽게 피부에 와 닿는다.
영남의 젖줄 낙동강은 이렇게 옛날부터 삶의 터전이었고,
수 천 년 긴 세월을 함께해온 이웃의 삶의 일부였다.
더러는 오염되었다는 비난을 듣거나, 때로는 범람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힌 적도 있지만,
이제 그 강이 다시 현대화되려는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단순한 강변이 자전거길과 더불어 승마길로 변신하여 우리에게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서려 하고 있다.
내 생활 아주 가까이 있는 금호강.
팔달교와 노곡교 사이의 하중도를 생태 테마공원이나 복합 문화 아일랜드로 만들고,
검단 나루터를 복원하여 뱃놀이 체험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가 하면,
금호강 둔치에 마라톤 왕복 풀코스까지 조성한다고 한다.
금호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살고 있는 나는 이래저래 행복하다.
강가에서는 사시사철 변화하는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산벚꽃이 구름 같은 봄날은 뻐꾹새 울음이 길다.
강따라 맑은 공기를 마시며 운동하거나 걷기를 즐기는 동네사람들과 만난다.
강뚝에는 노란 유채꽃이 봄바람을 데려와 반겨준다.
태공들은 강물에서 악취가 심했다는 전설을 뒤로 하고 고기를 심심찮게 잡아 올리고 있다.
물가를 찾는 백로며 오리들이 헤엄치며 먹이를 구하는 여름 금호강의 모습이 한가롭다.
저 멀리 팔달교 너머 금빛으로 빛나는 노을이 고운가 하면,
어둠이 밀려드는 신천대로의 저녁풍경은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이다.
나는 이번 나들이에서 만난 강변에서 두덩이의 행복을 얻었다.
가뭄으로 갈라져가는 논바닥을 바라보는 농민들에게 심장을 쥐어뜯는 아픔을 주기도 했던 강!
공장폐수나 생활하수로 인한 오염과 악취가 쾌적한 생활을 방해하는 주범이 되기도 했던 강!
뚝을 무너뜨리고 밀려온 황톳물이 일순 생존을 위협하는 악마의 모습이었던 강!
강이 뒤집어쓰고 있던 숱한 오명을 벗고 환경을 녹색으로 살리는 강이 되고,
웰빙을 최우선시 하는 삶의 대명사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주는 행복이 그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 강변을 따라 만들어진 자전거길이나 승마길을 재촉하여 올라가다가
예천 풍양의 삼강주막에 멈춰 막걸리잔을 기울이는 행복이다.
눈앞에서 출렁거리는 강물을 바라보며
낙동강 하구를 출발한 소금배가 정박했던 풍경을 떠올려 본다거나,
문경 새재를 넘어 한양 천리 과거장으로 향하던 영남의 선비 흉내라도 내볼 수 있다면
그건 순전히 덤의 행복이다.
낙동강, 금호강의 변신을 향한 꿈이 현실로 가까워지는 것을 실감하면서
나는 이 두덩이 또는 그 이상의 행복에 오랫동안 취해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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