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백련차 한잔(배계용 시)

죽장 2009. 2. 3. 11:29

 

 

백련차 한 잔

배 계 용

한해의 끝자락에서
다담상을 둘러앉아
다가올 새해를 이야기하며
차를 마신다.

주인은 냉동실의 문을 열고
연대궁이 비져 나온 봉지 하나 낸다.
은박을 걷어내고
굳어서 튿어지는 연잎을 벗기고
비닐 봉지의 맺힌 매듭을 풀자
나타난 하얗게 언 얼굴
묵은해를 보내는 흰 연꽃 한 송이.

차주전자 두껑을 열고
한 잎, 두 잎
또 한 잎, 또 한 잎 ........
주인의 손끝에서 꽃잎이 낙화처럼
주전자 속으로 내려앉는다.
뜨겁던 지난 한해의 삶으로 끓인
물을 붓는다, 그리고 한참.

얼어서 등이 굽도록 힘겨웠던
한해의 시간들이 투명하게
찻잔으로 쏟아진다.
목구멍을 타고
내리는 뜨거운 차 한잔
되도록 천천히 삼키고 입맛을 다시자
목젖을 거슬러 활짝 피어나는 꽃잎 하나
백련차 향기는 그렇게 온다.

다가오는 새해도
백련차 연꽃 향기처럼
활짝 피는 꽃잎 타고 오시기를 소망한다

 

 

지난 해까지 구미문협 지부장을 맡았던 배계용 시인

그가 쓴 시 "백련차 한잔"의 전문을 다시 감상한다.

 

설날, 모처럼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여러해 동안 냉장고에 간직해왔던 백련보따리를 풀었다.

그윽한 향이 여전했다.

 

백련차는 언제 마셔도 좋지만

새해 아침에 가족들이 들러앉아 마시니

더욱 좋다.

(위 사진은 그날 찍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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