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문패여, 안녕!

죽장 2008. 10. 17. 17:14

 이사를 오면서 문패를 떼어버렸다.

떼어버린 것이 아니라 필요가 없어져서 달지 않고 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내 이름 석자가 적혀진 것이라 내다 버리기도 뭐하여 그냥 가져오긴 하였지만

막상 와서 보니 달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오늘 우연히 서재 한 귀퉁이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쳐박혀 있는 문패가 눈에 띄었다.

 

그 문패는 여러 해 전 집을 지어 이사를 가면서 장만한 것이다.

아내와 나의 이름이 나란히 적힌 것으로 당시만 해도 흔치 않은 모양이었다.

이삿짐 정리가 끝나자 서둘러 대문기둥에 못질을 하고 문패를 걸었다.

단순히 우체부의 편의를 위한 용도라기보다는

오가는 사람들에게 집 주인의 이름을 알리고 싶은 생각이 더 컸으리라.

 

자랑스러운 문패 바로 아래에는 우편함이 걸려 있다.

전국의 문우들이 보내오는 책들로 인하여 우편함이 비는 날이 거의 없었다.

책 외에 고지서나 홍보물 같은 인쇄 자료들도 단골손님이었다.

우편물이 많아 함이 넘치는 날은 집배원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었으나

문패가 상당한 역할을 하리라 짐작하며 스스로 위안을 삼기도 하였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문패가 필요 없다.

집배원은 집집마다 우편물을 배달하는 것이 아니라

아파트 출입문 옆에 붙어있는 공동우편함에 넣는다.

주인의 이름을 보고 넣는 것이 아니라 공동우편함의 동호수만 보고 투입하면 그만이다.

가끔 내 앞으로 온 우편물이 아닌 경우도 있어 살펴보면

내가 이사 오기 전에 살던 사람이 수취인으로 되어 있다.

 

아파트문화는 삶의 새로운 풍속도를 만들고 있다.

이웃에 누가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더러는 사소한 것이 문제가 되어 이웃간에 다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웃사촌이 아니라 철저히 남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요즘의 이웃이다.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알 필요가 없는 시대는

아파트에 공동우편함을 탄생시켰고, 문패를 증발시켰다.

 

문패와 눈이 마주쳤다.

문패에 적힌 이름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우편배달원 앞에 당당하고 자랑스럽던 과거를 생각하는 듯하다.

골목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던 과거가 그리운지 모른다.

그래도 할 수 없다.

문패를 바라볼 사람 아무도 없는 세상. 문패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