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추위에 대한 추억

죽장 2009. 1. 15. 15:19
  오늘로 사흘 째 인가?

  올 들어 가장 춥다는 추위가 좀처럼 풀릴 기미가 없다. 찬바람이 파고드는 옷깃을 여미며 추위에 대한 추억을 떠올려 본다. 변변히 입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했던 그 시절의 가난이며, 몹쓸 추위가 아련한 추억이 되다니-.

 

  그 때의 추위를 기억하는가?.

  여러 형제가 솜이불 한 채를 끌어당기며 겨울밤을 지냈다. 문풍지 떠는 소리에 눈을 뜨면 밤사이 윗목에 두었던 숭늉이 얼어 있고는 했다. 온기가 남아있는 아랫목을 파고들다가 미련을 버리고 창호지문을 열면 깨끗하게 쓸어 두었던 마당에 서리가 하얗던 기억.

 

  눈 온 날 아침이 생각나는가?

  온통 뒤덮인 백설로 인하여 환희와 같이 맞은 아침. 기쁨으로 온 몸을 떨며 일어나 마당의 눈을 치우고, 골목의 눈까지 치우고 나면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눈덩이를 굴려 눈사람을 만들었다. 큰 것은 몸통으로 하고, 작은 것은 솔가지며 숯을 꽂아 얼굴을 만들었던 추억.

 

  그대, 눈싸움의 추억이 있는가?

  눈을 뭉쳐 던지고 도망가며 피하다가 넘어진 적은 얼마인가? 넘어져 누운 눈밭은 한없이 포근했고, 하늘을 흘러가는 흰 구름도 눈처럼 따스했다. 그러는 사이 햇살이 달아오르면 초가지붕 처마 밑으로 고드름이 자라기 시작한다. 창처럼 길고 뾰족한 고드름을 들고 칼싸움을 하였다. 펜싱경기의 원형이 바로 고드름 싸움인 줄 그 때는 몰랐다.

 

  우리들은 또 무엇을 하고 놀았던가?

  고드름을 가지고 놀다가 지치면 들판으로 내닫는다. 썰매를 들고 나간 들판은 바람이 더 심하다. 아버지가 토끼털로 만들어준 귀마개는 목에 걸려 흔들리고 있다. 송곳을 찍어 내닫는 앉은뱅이 썰매를 타고 경주를 하기도 한다. 그렇다. 썰매경주를 떠올리니 옛 로마시절 ‘벤허’가 4두마차를 몰아 내닫던 마차경기가 연상된다.

 

  옷자락이 젖어 얼어붙은 것을 어떻게 할까?

  미끄러운 얼음판에서는 앞으로 혹은 뒤로 넘어지기 십상이다. 논바닥에 얼음이 두껍게 얼긴 하였지만 더러는 깨지기도 한다. 엉덩이가 젖고 양말이 젖어도 상관이 없다. 논두렁에 불을 질러 양말을 말려보지만 영 시원하질 않다. 양말을 태웠다고 어머니에게 혼이 난 적도 있다.

 

  이게 올 추위의 전부란 말인가?

  오늘 며칠 째 계속되는 추위를 느끼며 추억하노니, 좀 더 추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유래 없는 경제난에 추위까지 길어지면 우리네 삶이 어려워질 게 뻔하다. 그래도 겨울의 한복판에 서니 몹시도 춥던 시절이 한줄기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것을 어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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