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생각

씁쓸한 귀가길

죽장 2008. 12. 2. 13:43

  11월 29일 저녁 7시35분경이었다. 우리 부부는 대구시 북구 구암동 소재 구암농협 인근에 용무가 있어 갔었다. 주차구역에 승용차를 주차시켜 놓았다가 용무를 마친 후 출발하려 하니 내차의 우측에 주차해둔 하얀색의 승용차(30거6544) 때문에 나갈 수가 없었다.

 

  마침 내리고 있는 운전자에게 ‘차를 조금 옮겨주면 좋겠다’고 하니 본인은 ‘술을 먹어서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럼 내가 옮겨주겠다’고 하니 ‘그렇게는 하기 싫다’는 것이었다. 말투나 행동으로 볼 때 꽤나 취한 모습이었다.

 

  그 사내는 자기 아내의 생일케이크를 사러 나온 듯 했다. 부인이 남편에게 몇 번이나 ‘차를 빼주라’고 해도 막무가내인 체 ‘빨리 케이크를 사오라’고만 채근하였다. 잠시 후 케이크를 사온 부인이 차 열쇄를 받아서 운전석에 앉았다.

 

  그때부터 이 남자는 우리 부부를 향해 갖은 욕설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한마디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술 취한 젊은 사내, 더구나 가족 앞에서 한껏 위세를 부리고 있는 사람을 정상적으로 상대할 수가 없었다. 사내는 몇 차례나 욕설을 퍼붓고는 경찰에 신고를 하든지 마음대로 하라고 소리치면서 사라졌다.

 

  우리는 인근의 파출소로 갔다. 경위 전진우 팀장이 우리를 맞았다. 우리 부부의 하소연을 듣더니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다른 증인도 없고, 혐오감을 주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도 없으니 만약에 차적을 조회하여 불렀을 경우 오히려 무고한다며 소란이라도 피우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이었다.

 

  사내가 잘못했다며 사과할 것이라곤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으나, 적어도 그 버릇없는 사내를 불러 호통을 치거나 성숙되고 건전한 시민사회를 위해서 그런 행동을 자제하라는 충고라도 해주기를 바랐던 우리는 실망만 안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귀가하는 길이 씁쓸했다. 술의 힘을 빌려 함부로 행동하는 사내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시민의 마음에 공감해주지 않는 공직자도 원망스러웠다.

'보통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파트와 소나무  (0) 2009.01.02
박주가리  (0) 2008.12.24
송년회에서 무슨 노래를...  (0) 2008.11.20
벌꿀이 강력 항생제  (0) 2008.10.01
대관령 소식, 그후  (0) 2008.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