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조명래 수필론(수필집 "버리고 가벼워지기"를 중심으로)

죽장 2008. 7. 24. 08:39

 

 

 [부분]

이 책은 조명래 수필가의 다섯 번째 수필집이다.

지금까지 발표한 작품 양이나 활동 경륜으로 보아,

이제 그는 수필 문단에서 중진급 작가라 하고도 남는다.

그런데 그는 수필가이면서 수필을 쓰지 않는다.

수필을 쓰지 않기 때문에, 그는 진정한 수필가다.

이 모순된 발언은 모순이 아니다.

그는 수필의 좁은 울타리에 갇혀 수필 타령을 하지 않는 수필가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수필 문학의 가장 심각한 장애는

새로운 변화의 흐름을 수용하지 못 하고

수필의 영역을 좁혀 들어가 거기에 안주하려는 태도다. 

 

2000년대에 들어와 수필 인구의 증가는 놀라울 정도였다.

지금 상황도 마찬가지다.

다른 문학 장르가 전반적으로 위축되고 있는 점과는 대조적이다.

문학의 위기로 진단하거나  문학의 죽음까지 예측하면서

그 원인으로 영상 문화의 급속한 확산을 꼽는다.

영상 문화 확산은 상대적으로 문자 문화의 핵심인 문학의 위축을 몰고 왔다고 보는데,

유독 수필만은 오히려 더욱 번성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인터넷의 일반화와 함께

사이버공간이라는 새로운 장이 형성되었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사이버공간의 콘텐츠 생산에 필수적인 것이 바로 글쓰기인데,

그것은 기존의 소수 전문가의 전유물로서

권위적인 문학 형식과 가치보다는 대중성을 지향한다.

이에 가장 적합한 형태가 수필이었다.

수필 인구의 급증은 수필이 사이버리즘 환경에 가장 우호적인 글쓰기로 부상하면서

많은 사람이 수필 쓰기에 동참한 결과다.

수필 인구의 확대는 독자의 수요에 따른 것이 아니라,

사이버리즘이란 매체 환경에 연유한다는 점에서 건강하지 못하다.

즉, 독자 없는 작품이 양산되기 때문이다.

이제 수필 쓰기의 의미는 독자와의 공감적 소통보다는

수필가 자신의 자기표현에 의의를 두게 되었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문학 본연의 의미가 희석되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요청되는 바람직한 수필 창작의 길은 무엇인가?

모순되게도 좋은 수필을 쓰려면, 수필을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수필 외연이 예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확대되었는데도,

이를 인식하지 못 하고 전통적인 수필의 좁은 문법에 안주하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사이버리즘과 결합한 오늘의 수필 쓰기는 넓은 외연과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에세이의 어원인 ‘에세’라는 말은 원래 ‘새로운 시도’라는 뜻이듯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수필 창작방법은 전통 문법을 해체하고,

새로운 변신을 멈추지 않는 실험정신의 실천이다.

실험적인 물결이 밀어닥치자 기득권을 가진 일부 기성 수필가는

순수성, 문학성, 서정성 등을 들고 나와

수필이 문학과 예술이 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한껏 높인다.

수필의 예술성과 문학성이란 어떤 것인가?

구체적인 성질로 존재하기는 하는가?

여기에는 예술과 문학이라는 우상만 내세울 뿐 설득력 있는 논리가 없다.

서정성을 마치 문학성이나 예술성으로 착각하고

수필의 유일 가치로 여기는 것은 편협한 태도다.

서정수필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랫동안 수필의 전통적인 양식으로 자리 잡아왔던 만큼

그대로 가치를 인정하되, 수필 쓰기의 외연을 확대하자는 주장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모처럼 호기를 만난 수필이 발전적으로 변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수필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필가 조명래의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그의  작품은 전통적인 수필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에게 맞는 나름의 형식을 채용한다.

전통적인 서정수필, 단상, 주장하는 글로서 에세이, 편지글, 기행수필 등

다양한 형식을 넘나들면서  사회 현실과 일상과 자아를 자유롭게 사유한다.

문학과 예술이라는 우상을 섬기지 않는다. 

문학적으로 표현하려고 언어를 꾸미거나, 대상에 대한 관조적이거나,

철학적인 해석을 덧칠하여 독자를 제압하려 하지 않는다.

사실을 가능한 한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체험한 것을 소박한 일화로 차분하게 정리한다.

건조한 듯하면서도 담백하다.

그의 창작방법은 수필이 외연을 넓히고 다양한 실험을 실천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을 모범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이처럼 그는 작은 수필에 매달리지 않기 때문에 진정한 수필가다. 

[이하 생략, 전문은 아래 첨부 파일에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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