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얌마, 디비!

죽장 2008. 5. 7. 17:46

 

 [이주형, 2007.12.28생)

 

  가끔 타게 되는 서울의 지하철 안에서 낮 익은 고향의 말씨를 들을 때면 나도 몰래 귀가 쫑긋해진다. 생면부지의 얼굴이 분명하지만 선 듯 다가오는 친근감은 어쩔 수가 없다. 한때 촌놈소리가 듣기 싫어 서울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씨를 흉내 내 본 적도 있지만, 몸에 베인 고향 사투리가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오는 바람에 이내 들통이 나고는 했다. 학교에 입학하여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사투리가 줄어들기는 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습관이 되어있는 억양은 숨기고 싶다고 해서 숨겨지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며칠 전 갓 백일을 넘긴 외손주 녀석이 처음으로 외가에 왔다. 사위와 딸아이도 모처럼의 처가와 친정 나들이였기에 여간 반갑지가 않았다. 꼬맹이는 어른들의 부산함 속에서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금방 낮 익은 얼굴이 된다. 핏줄이 당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며 좋아라고 떠드는 어른들의 결론에 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녀석은 초점 없는 눈으로 멀뚱멀뚱 천정만 쳐다보던 몇 개월 전의 아이가 아니었다. 병원의 산실에서 처음 만났던 날의 기억으로는 꼼지락거리는 팔과 다리가 힘겹게 보였었는데 이젠 토실토실한 얼굴에 티 없는 눈망울을 굴리며 쳐다보다가 방싯거리며 웃기까지 한다. 손뼉을 치면 고개를 돌려 눈을 맞추기도 한다. 두 손을 뻗어 뭐든지 닥치는 대로 잡아채는가 하면 다리를 파닥거리며 허공을 힘차게 내차기도 한다. 아이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신기하고 대견스러울 뿐이었다.

 

  어른들은 아이가 하는 모든 동작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녀석은 고개를 빳빳하게 뒤로 젖히며 팔을 허우적거린다. 짧은 다리를 교차시키며 엉덩이를 세우려 하다가는 도로 원위치가 되고는 했다. 아이는 포기하지 않고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면서 몸을 뒤집으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었다. 안타깝게 내려다보고 있던 내 입에서 순간적으로 ‘얌마, 디비!’하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손주를 응원하는 할아버지의 고함이었다. 

 

  서울서 태어나 자란 사위가 제 식구를 쳐다본다. 장인어른이 방금 내뱉은 말의 뜻이 뭐냐고 묻는 눈치다. 바로 그 순간 전신을 움직이며 안간힘을 쓰던 아이의 몸이 꿍하면서 뒤집혀졌다. 역사적인 순간을 축하하는 박수가 쏟아졌다. ‘이서방, 이게 바로 디비는 거라네’ 하는 나의 해석과 함께 쏟아지는 폭소가 창을 넘었다. 아이의 동작을 지켜보느라 팽팽해 있던 긴장이 일순 풀어졌다.

 

  조금 전의 것은 생각이 나지 않으나 오래 전의 것은 생생하게 기억해내는 현상이 바로 치매의 초기증상이라던 말이 생각난다. 그러면 오래 잊었던 어휘들이 다급한 순간에 저절로 튀어 나오는 증상은 그 단계의 앞일까, 뒤일까? 어찌되었거나 분명한 것은 내 인생에도 황혼의 그늘이 다가서고 있음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장강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며 흐르듯이, 인간이 만들어가는 세대의 물결이 넘실거리고 있는 현실을 깨닫는다.

 

  예고 없이 고향 사투리가 튀어나오는 나의 인생시계를 이쯤에서 멈추게 할 수는 없을까? 아니면 손주가 안간힘을 쓰며 성장하는 풍경을 묵묵히 바라보며 남은 인생의 작은 행복에 마냥 젖어 있을까? 도무지 판단이 서질 않는 내 머리 속에 “얌마, 디비!”라고 소리쳤던 고향의 언어가 오래도록 떠나지 않고 있다. 그렇다. 부끄러움이 탄로날까봐 숨기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나의 옛 것을 즐기면서 당당하게 살고 싶다.

(2008.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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