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가방을 든 여인

죽장 2008. 4. 1. 17:09
 가방을 든 여인


  연수 차 중국 상해에 갔을 때이다. 일행 중 한 명이 가이드를 졸라 야간 특별 옵션으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짝퉁가게’에 가게 되었다. 전문가도 진품과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졌다는 주인의 말을 들으며 사람들은 하나 둘 가방을 사기 시작하였다. 가방에 대한 별 상식이 없었던지라 뭐가 명품인지, 명품과 비슷한 물건인지 모르는 채 집사람에게 줄 것을 하나 골라 거금 삼십 몇 만원을 주고 샀다. 모처럼 칭찬받을 일을 한 아이처럼 기분이 좋았다.

 

  돌아와서 근엄한 표정으로 여행가방을 열었다. 평소 변변한 선물도 못해 항상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큰맘 먹고 명품을 장만했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아내의 표정을 살폈다. 고맙다며 엎어지는 게 아니라 얼마를 줬느냐고 묻는다. 일순 신문받는 느낌이 되었다. 구입한 가격은 비밀이지만 여기서는 못해도 이백만원은 할꺼라고 했다. 믿지 않는 눈치였으나 아무 생각 말고 소중하게 들고 다니라며 큰소리치는 것으로 일단락이 되었다.

 

  그 후 말은 하지 않으면서도 유심히 살펴보니 내가 선물한 명품 가방을 들고 외출하는 집사람의 품위가 전보다 훨씬 돋보이는 듯했다. 옷이 날개라는 옛말도 맞고, 여자는 꾸미기 나름이라는 요즘 말도 맞음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궁금한 것은 아직도 명품으로 알고 있는지, 짝퉁인 줄 알지만 속아주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집사람의 속내이다.

 

  퇴근해온 아내가 동료직원의 얘기라며 입을 연다. 「중학교에 갓 입학한 딸과 함께 가게 앞을 지나다가 마음에 드는 가방을 발견하고는 가격을 확인해 보니 만만치가 않았다. 빠듯한 형편에 덥석 살 수가 없었지만 돌아서기에도 너무 아쉬웠다. 엄마의 표정을 읽은 딸아이의 손에 이끌려 그냥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출근해서 무심코 가방을 열자 하얀 봉투가 손에 집혀 어제의 가방값에 해당하는 돈과 함께 메모가 들어 있었다. 내용인 즉 어른들로부터 받은 세뱃돈이며, 친척들이 중학교 입학 기념으로 준 돈이니 걱정 말고 엄마 마음에 드는 가방을 사라는 딸애의 마음이 들어 있더라」는 것이었다.

 

  엄마의 채면을 살려주면서 소망하는 가방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하는 그 집 아이의 마음이 눈물겹게 기특하다고 강조한다. 지난번에 선물했던 가방의 내력이 있는지라 한마디 거들지 않을 수 없었다. 가방을 사준 사람의 마음도 중요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방을 들고 다니는 사람의 마음이다. 가방 주인이라면 모름지기 그 가방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겉이 번드레한 가방이 아니라 삶의 지혜와 가족의 사랑이 담긴 속이 중요하다. 금은보화로 채워진 무거운 가방보다는 아름다운 추억에 소중한 미래까지 담긴 맞춤한 무게이어야 한다. 특별히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가방에 무엇을 채워서 들고 다닐 것인가 보다 무엇을 비워내고 가볍게 들고 다닐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가방 사준 사람 중 누가 더 기특하냐고 물었다. ‘둘 다’라는 대답을 들으며 얼른 화답을 했다. 가방 든 여인이 수도 없이 많지만 당신이 가장 멋지더라고. 우리 두 사람의 얼굴이 모처럼 붉어지는 것 같았다. 

 (2008.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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