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저녁부터 아침까지

죽장 2008. 2. 4. 21:14
 저녁부터 아침까지

 

  저녁식사를 한 후 산책을 나섰다. 섣달그믐께 날씨가 싸늘하다. 발그레하던 저녁노을이 재속의 불씨처럼 사그라들면서 하늘에는 검은 장막이 짙어지는 시각이다. 눈앞에 전개되는 밤 풍경이 너무 아름답다. 길거리에는 귀가를 서두르는 차량의 행렬이 꼬리를 잇고, 아파트의 창에도 하나 둘 불이 들어오고 있다.


  어둔 바탕에 노랗거나, 붉거나, 빨간 점들로 채워진 커다란 캔버스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대형 입체 캔버스의 중심에 서서 멀리 가까이서 명멸하는 불빛들을 하나씩 헤아려본다. 황금빛 가로등이 가지런하다. 자동차의 전조등이 붉은 띠를 이루고 있다. 교회 첨탑의 십자가가 여기저기서 빨간색으로 깜박이고 있다. 먼 곳에서 작은 점들로 반짝이는 것은 아파트 실내등이다.


  자동차들은 멈췄다 움직이기를 반복한다. 어둠 속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는 기다림을 향하고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이 밥상을 차려놓고 기다리는가 하면 하루의 노동에 대한 달콤한 휴식이 기다리고 있다. 노란색, 붉은색, 그리고 빨간색이 어우러진 고운 밤거리를 지나, 단란한 등불 아래 머리를 맞댄 가족의 행복이 그림인 양 떠오른다.


  눈을 감았다 뜨는 잠깐 사이 어둠은 상당히 진행되어 있다. 거리를 밝히고 있는 형형색색의 불빛들은 더욱 요란해져 있다. 노란 가로등이 줄지어 늘어섰을 뿐 아니라 가고 오는 자동차들의 줄도 여전하다. 귀가 차량의 증가로 정체되는 자동차의 불빛을 바라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굳이 도착을 알리지도 않았지만 주부는 물 묻은 손을 닦으며 나와 맞을 것이다. 아침에 헤어졌던 가족들이 다시 돌아와 제자리에 앉았다. 저녁밥상이 가족의 마음처럼 따스하다. 학교에서, 직장에서의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 앉은 자리 행복이 피어난다. 그리고는 천천히 한 잔의 차를 마신다. 쪼그만 들창 빼곡하게 별무리가 들어와 있다. 전등이 꺼지면 겨울밤이 조용히 다가선다.


  일몰과 함께 밤이 시작되었다. 편히 몸을 뉘이고 낮 동안의 긴장을 푼다. 몸과 마음이 현실에서 해방되면서 휴식에 빠진다. 잠은 꿈과 연이어 있다. 꿈속에 다시 별이 뜬다. 어둠이 빛을 더욱 돋보이게 하듯이 꿈속에 돋아난 별들은 육안으로 보는 별보다 더 화려하다. 낮에 미쳐 못한 일을 꿈속에서 성취한다. 낮에 못 본 얼굴 하나 간절한 그리움으로 나타난다.


  아침은 금방이다. 밤새 뒤척이며 설계하고 쌓은 성들이 솟아오르는 태양과 함께 소멸하고 만다. 지나간 날은 사라지고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어제와는 또 다른 빛이다.


          붉은 노을이 사라진 하늘

          철새 날아가고 없는 공간이 허허롭다.

          불빛을 맞으며 귀가한 저녁

          가족이 둘러앉은 자리는 행복이다.

          하늘의 별이 내려와

          가슴속에 꿈이 되는 밤의 터널을 지나

          새 아침 

          태양이 빛나고 있다.


                                                   (2008.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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