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최고의 100m 기록 보유자가 전성기 때 프로야구단에 전문 대주자로 영입된 적이 있다. 이론적으로만 보면 단거리를 우리나라에서 제일 빨리 달릴 수 있는 최고의 스프린터가 도루를 잘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허지만 그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야구전문가의 지적처럼 도루는 빠르기와 함께 센스와 결단성 등을 고루 갖춰야 하는 ‘또 하나의 영역’이다. 바람처럼 빠른 발을 가졌다고 도루도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일종의 착각이다.
○ 가왕(歌王)이라고까지 불리는 조용필이 아무리 노래를 잘 한다고 해도 뮤지컬에서 1인자가 될 수는 없다. 뮤지컬의 기본이 가창력일지라도 그렇다. 천부적 운동감각으로 포로야구에 도전했던 불세출의 농구천재 마이클 조던이 야구에서 빛을 보지 못했던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특정분야에서의 성공이 다른 모든 분야의 성공을 보장할 수는 없다. 이 당연한 명제가 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도 적용되어야 마땅한데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 남들에 비해 월등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은 100m도 가장 빠르게 달릴 수 있고, 노래도 가장 잘 부를 수 있고, 덩크슛도 호쾌하게 꽂아 넣을 수 있으며, 홈런도 마음먹은 대로 펑펑 날릴 수 있다고 믿는 격이다. 본인도 그렇고 주위사람들의 인식 또한 그렇다. 일종의 심리적 착시현상이다. 부를 축적한 사람을 폄하할 필요도 없지만 무턱대고 이상화하는 것도 부적절하다. 그림을 잘 그리거나 피아노를 잘 치거나 남을 잘 배려하는 것처럼 빛나는 하나의 재능에 불과하다. 모든 것이 될 수는 없다.
○ 세계적으로 유명한 홈스쿨링운동가는 수십 년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천부적으로 능력이 뛰어난 이들만 살아남는다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회의를 가졌다고 고백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니 통찰력, 지혜, 정의감, 너그러움, 용기, 창의성처럼 인간의 훌륭함을 대표하는 특징들이 학교에서 우수하다고 판단받지 못한, 전혀 엉뚱한 아이들에게서 수시로 나타나 혼란을 느꼈다는 것이다. 공부를 잘 한다는 기준 하나로 그 사람이 모든 면에서 우수할 것이라고 판단하는 게 어리석다는 것은 이제 상식에 속한다. 그 같은 논리는 부를 축적한 사람에 대한 인식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마땅하다. 착각상태의 시대적 미망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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