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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자원은 물, 공기, 모래 그리고 사람

죽장 2007. 12. 28. 15:42
“한국의 자원은 공기, 물, 모래, 그리고 사람”
원로물리학자 김정욱 교수가 던지는 苦言 (9)
수학이라는 수의 학문을 통해 자연과 우주의 섭리를 신묘막측(神妙莫測)하게 풀어나가는 물리학.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는 물리학은 과학의 최고봉으로 일컫는다. 물리학 속에는 아름다운 우주와 자연의 신비가 있고 우리의 인생이 담겨 있다. 하늘의 혁명 코페르니쿠스가 나왔는가 하면 뉴턴의 만유인력,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탄생했다. 새로운 과학시대를 열고 있는 현대과학 양자역학도 그렇다. 우주탐사도 가능해졌다. 뿐만 아니다. 핵폭탄과 수소폭탄을 비롯해 대량살상 무기도 물리학에서 나왔다. 기초과학이 이처럼 중요하다. 21세기의 화두는 창조(creativity)다. 사이언스타임즈는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상기시키고 국제경쟁력에서 과학교육이 나갈 길을 짚어보기 위해 원로 물리학자 김정욱 교수를 특별히 초대했다. 고희를 훨씬 넘긴 나이에도 왕성한 학문활동을 하고 있는 김 교수는 미국의 명문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40년간 물리학을 가르쳤다. 고등과학원의 초대 및 2대 원장을 지낸 그는 우리나라 기초과학의 역사를 지켜본 증인이다. ‘원로 물리학자 김정욱 교수’를 통해 김 교수가 던지는 쓴 소리와 그의 인생 이야기가 도움이 됐으면 한다. [편집자 註]


“서울대를 폐지하라, 아니면 전부 서울대로 만들어라”

▲ 김정욱 교수는 우리나라는 과학으로 성공할 사람이 전 재산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
김정욱 교수가 가장 좋아하면서도 즐겨 쓰는 말은 학문적 방황(intellectual wandering)이다. 학문에 대한 방황과 고뇌, 갈등이 위대한 과학을 탄생시킨다는 것이 그의 굳은 신념이자 철학이다. 그리고 또 하나가 더 있다. “우리나라 자원은 공기, 물, 모래, 그리고 사람”이라는 말이다.

우리나라 자원이 사람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석유를 비롯해 이렇다 할 천연자원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먹고 살기 위해서는 사람이라는 재산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교육이 중요하다. 대학입학이 중요하다. 또 그래서 엄청난 돈을 사교육비에 쏟아 붓고 있다.

좋은 대학에 입학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인생의 70~80%의 성공을 보장하는 사회다. 입학 시험지가 사전에 누출되는가 하면 대학수능시험에서는 휴대폰을 통해 문제의 해답을 알려주는 해괴망측한 일들도 벌어진다.

교육에 대한 열정이 분명히 도를 넘었다. 그러나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손으로 꼽는 명문대 5개 대학에 입학했다는 이유만으로 인생 80%가 성공이 보장되는데 손가락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대학에서 무엇을 공부하고 무엇을 남겼느냐는 별로 의미가 없다. 졸업 후 사회에서 어떤 능력을 발휘하느냐? 별 의미가 없는 질문이다.

언제까지 대학이 간판이 될 것인가?

김 교수는 그래서 대학간판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한국 사회에 이렇게 일갈한다. “서울대학을 폐지하라, 서울대학을 폐지할 수 없다면 모든 대학을 서울대학으로 만들어라. 그렇지 못한다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 한국의 교육은 완전히 메말라 가고 있다. 창의력이 요구되는 과학분야는 더욱더 그렇다.

노벨상은 꿈도 꾸지 말라. 이런 상황에서 노벨상을 기대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신기할 노릇이다.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인적자원은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교육은 학생들이 갖고 있는 창의력 개발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창의력을 말살시키고 있을 정도다. 이 교육으로는 국제경쟁력에서 이길 수 없다.”

김 교수가 서울대 폐지 운운하는 것은 다른 뜻이 아니다. 서울대학이 그렇게 좋은(김 교수에 따르면, 시험 잘 푸는) 학생을 뽑아놓고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하고 경쟁력 있는 재목으로 육성하지 못한다면 서울대학 자격이 없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학교는 반드시 엘리트 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다. 서울대학은 그 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 반도체는 우리나라 경제의 중심 산업이다.  ⓒ
김 교수는 공기, 물, 모래, 바람이 한국의 자원이라는 말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들었다고 한다. 단순하게 들리지만 김 교수에게는 의미심장한 이야기였다. 김 교수는 그 과학자가 들려준 이야기가 정말 맞는 말이라고 지적한다.

“모래는 반도체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이야기입니다”

“2004년 8월로 기억합니다. 뉴질랜드 대사관 오찬에 참석했던 적이 있습니다. 조그마한 나라 뉴질랜드가 배출한 3명의 노벨상 수상자 가운데 한 명인 앨런 맥디아미드(Alan Macdiarmid)라는 과학자가 농담 비슷하게 한 이야기인데 상당히 기억에 남습니다.

화학자로 2000년에 노벨화학상을 받았는데 우리나라와도 관련이 있어 전남대학에 이 분과 같이 연구하는 맥디아미드연구소도 있을 정도입니다. 지난 2월에 세상을 떠났지요. 전기가 통하는 플라스틱(electronic polymer)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열어 ‘플라스틱 시대’를 예고한 사람입니다.

이 분이 한 이야기는 결국 한국에는 마시고 숨쉴 수 있는 물과 공기라는 재산밖에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물과 공기는 아무데나 다 있는 거죠.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모래를 재산으로 지적한 겁니다. 왜 모래를 재산이라고 지적했는지 아시겠어요? 벽돌을 만들어 건물을 짓는다고요?

“결국 반도체도 사람이라는 이야기죠”

아닙니다. 우리나라 삼성을 비롯해 반도체산업을 지적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반도체는 한국의 중요한 재산이라는 걸 꼬집으면서 은유적으로 이야기한 것이죠. 그러나 반도체를 만드는 재료인 실리콘이 모래에 많지만 사실 어느 곳에나 구할 수 있는 재료입니다. 결국 모래도 커다란 자원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자원은 사람입니다. 석유나 천연가스 등 중요한 자원은 사람이 아니죠. 똑똑하고 능력이 없어도 발견하고 소유만 할 수 있다면 큰 돈을 벌어 잘 살 수 있을 겁니다. 반도체가 자원인 것은 모래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모래 속에 있는 실리콘에서 우수한 반도체를 만들어 내는 우수한 인재, 즉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 반도체 재료는 돌에서 발견되는 실리콘이다. 실리콘은 특별한 자원이 아니다. 이것을 질 좋은 반도체로 만드는 사람이 자원이다.  ⓒ
맥디아미드 교수는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를 거쳐 21세기 인류는 과학기술 중심의 '플라스틱 시대'의 건설을 보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 학자다. 무엇보다 전 세계적으로 생산되는 모든 종류의 플라스틱 양은 철의 양보다 더 많다는 이유 때문이다. 자신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전기가 통하는 플라스틱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재료는 플라스틱 시대'를 여는 강력한 힘이라고 주장한다.

‘전기가 통하는 플라스틱’의 개념을 발견

그는 또 전도체와 반도체형의 고분자를 포함해 새로운 재료들을 계속적으로 발견함에 따라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에너지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하기도 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맥디아미드 교수가 매달려온 연구는 렉테나(Rectenna)라는 프로젝트다. 태양열을 사용해 지상에서 에너지를 만들 경우 효율성이 너무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우주에서 직접 태양에너지를 전기로 만들고 이를 마이크로파로 지상에 보낸 뒤 다시 전기로 환원시켜 에너지로 사용하는 연구다.

펜실베이니아 대학 교수인 맥디아미드 교수는 21세기 중반이 되면 세계 인구가 100억 명이 될 것이며, 그에 필요한 에너지 수요는 10~30테라와트(1테라와트는 10의13승W)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면서 우주에서 에너지를 얻기 위한 새로운 아폴로 프로젝트를 제안하기도 했다.

“NASA의 기본도 우주에서 태양에너지를 가져 오는 것”

이 계획을 통해 화석에너지를 줄이고 대신 태양열, 풍력, 지열 등을 주요 에너지원으로 하자는 것으로 태양열 활용은 맥디아미드 교수의 가장 중요한 연구 목표다. 그러면 공기오염을 걱정할 이유가 없다. 지구온난화 문제도 해결된다. 얼마나 좋은 과학인가.

미국이 수 조 달러를 투자하면서 NASA를 지원하는 것은 달, 화성 탐사를 통해 우주의 기원을 찾고 인간 생명의 기원을 찾으려는 의도만이 아니다. NASA가 기본적으로 노리고 있는 것이 바로 맥디아미드 교수의 생각을 실현시키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능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NASA가 정열을 쏟고 있는 우주정거장 계획은 인간들에게 우주 여행을 시켜주어 돈을 벌겠다는 의도가 아니다. 기본 목적 가운데 하나가 여기에 있다. 원유 확보를 떠나서 엄청난 우주의 에너지를 선점하겠다는 의도다. 아마 무한한 우주의 에너지를 확보해버린다면 그 에너지만으로 영원히 먹고 살고도 남을 돈을 벌 수 있다.

▲ 2000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 앨란 맥디아미드 교수는 우주 태양열을 에너지로 사용하는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
김 교수가 강조하려는 바는 에너지도 아니고 돈을 버는 것도 아니다. 그러한 위대한 개념을 제시할 맥디아미드와 같은 위대한 기초과학자가 나올 수 없는 한국이라는 토양을 아쉬워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왜 그렇게 중요한 기초과학을 키우고 기초과학자를 양성하는 데 소홀히 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반도체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반도체 개념을 처음으로 발견해야”

김 교수가 늘 주장하고 아쉬워하는 바는 이렇다. “우수한 반도체를 만드는 일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반도체가 생길 수 있다는 기초 개념을 만들어 내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그게 21세기가 요구하는 창의성입니다. 이제 응용만으로는 절대 승부를 걸 수 없습니다.

잘 모르는 한국 사람들은 종종 일본의 과학기술을 ‘모방의 천국’이니, ‘미국 제품을 잘 베끼는 나라’라고 비하하는 발언을 많이 합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들의 기초과학수준은 대단합니다. 지원도 지원이지만 그 수준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명치유신 때부터 막대한 투자를 하면서 기반을 닦은 결과입니다.

물론 이차대전 후 가난한 시절 처음에는 그렇겠지요. 또 미국과 비교해서 기초과학에서는 뒤떨어진 면이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대단한 기초과학 선진국입니다. 우리보다 못 산다고 하는 중국과 인도의 수준도 대단합니다.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과 인도의 기초과학은 너무 우수해”

동유럽에 속했기 때문에 전혀 발달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북구 오스트리아, 체코, 폴란드 등도 대단합니다. 기초과학은 응용과학으로 돈을 번 다음에 일종의 장식용으로 육성하는 그런 분야가 아닙니다. 미래에 대한 안목이 있다면 주린 배를 움켜쥐면서도 투자해야 할 분야입니다.

기초과학은 기술과 공학을 치장하기 위한 장식품도 아니고, 돈 많이 번 사람이 경매장에서 비싼 값에 사서 집을 장식하기 위한 골동품이 아닙니다. 그리고 가격이 오르면 내다파는, 그러한 분야가 아닙니다.

깨끗한 물과 청정한 공기는 영원한 재산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꾸어 후손에게 넘겨줄 가장 고귀한 유산입니다. 기초과학이 또한 그렇습니다. 물과 공기, 그리고 우주와 자연은 우리에게 현금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보이지 않는 엄청난 재산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 재산의 비밀이 무엇인지를 하나 둘 밝히는 게 기초과학입니다.

“기초과학은 결코 장식품이 아닙니다”

▲ 위대한 과학은 창의성에서 비롯된다. 21세기 한국이 절실하게 요구하는 바다.  ⓒ
김 교수는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이나 이해부족도 불만이지만 더욱 더 큰 그의 불만은 우리나라의 교육이다. 과연 주입식과 베끼기로 서울대학을 간들, 서울대학 시험에서 일등으로 들어간들 어떻게 미래의 제목으로 쓸 수 있겠느냐? 하는 우려와 실망감이다.

“한국 학생들은 거의 완벽한 시험을 치르는 기계입니다. 교과서나 참고서에 있는 문제들을 일사천리로 푸는 것을 제외하면 배운 것이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훌륭하다고 인정받은 그들의 머리 속에서 훌륭한 창의성이 나올 수 있을까요? 이미 피곤으로 육체와 정신까지 지쳐버린 그들에게 노벨상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한국의 자원은 공기, 물, 모래 그리고 사람이다. 간단한 이야기지만 깊은 이야기다. 우주에서 무한한 에너지를 가져오자고 주장한 노벨상 수상자 맥디아미드가 한국을 향해 던지는 이야기를 다시 한번 음미해야 한다. 또 그와 같은 위대한 과학자가 탄생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김 교수도 바로 그 점을 희망하고 아쉬워하고 있다.
/김형근 편집위원  hgkim5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