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원고와 자료

더 큰 채움을 위해 먼저 버려라

죽장 2007. 12. 24. 15:18
 

더 큰 채움을 위해 먼저 비워라


  올해 얼마나 많이 비우고 살았는가? 머리엔 지식을, 핸드폰엔 전화번호를, 통장엔 돈을 채우느라 정신없이 바빴던 한 해였다. 그런데 이렇게 마냥 채우고 사는 것만이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있다.

  ‘비움을 통해 더 큰 채움을 지향하라. 비우는 것이 채우는 것보다 더 행복하고 기쁜 일이다’ 노자의 ‘위도일손(爲道日損)’ 행복론이다. 위도는 ‘인간이 가야 할 길’이고, 일손은 ‘날마다 줄이는 것’이다. ‘손’은 덜어 냄·비움의 줄임말이다. 날마다 덜어내고 비우고, 줄이는 것이 인간이 가야 할 길이라는 이 구절이 머리에 확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다. 채우는 것만이 아름다운 일이고, 더하는 것만이 경쟁력이라는 일상의 상식을 완전히 뒤집는 노자의 생각 속엔 발상의 전환이 숨어 있다.

  비움의 철학에 대하여 노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실행원칙을 말한다.

  첫째, 마음을 비우고 배를 채워라. ‘허심실복(虛心實腹)’. 채워야 할 것은 배지 마음이 아니라는 말이다. 마음에 욕심이 가득 차고, 욕망이 가득 차면 머리가 무거워진다. 머리가 무거워지면 결국 무게중심을 잃고 쓰러질 수밖에 없다. 배를 채워 무게중심을 아래로 낮추라. 마음을 비워야 행복하다.

  둘째, 뜻을 약하게 하고 뼈를 강하게 하라. 약지강골(弱志强骨). 의지가 너무 강해지면 마음에 상처가 된다고 한다. 무엇을 반드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늘 가슴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뜻보다는 뼈를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튼튼한 뼈대에 세운 뜻은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는다.

  셋째, 감각기관을 닫고 정신활동을 정지하라. ‘색태폐문(塞兌閉門)’. 입을 막아 말을 아끼고 눈을 막아 화려한 색을 피하고 귀를 막아 아름다운 소리를 멀리해야 한다. 생각을 최소한 단순하게 하여 복잡함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넷째, 날카로움을 꺾고 어지러움을 풀어라. ‘좌예해분(挫銳解粉)’. 날카로운 칼은 남에게 상처 주기 쉽다. 날카로운 말 한마디가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어지럽게 얽혀있는 마음속의 실타레를 풀어야 한다.

  다섯째, 광채를 줄이고 세속의 눈높이에 맞춰라. ‘화광동진(和光同塵)’. 빛이 강한 사람에게는 사람이 모여들지 못한다. 화광은 내가 가진 광채를 온화하게 하는 것이다. 동진은 세속의 눈높이에 맞추는 것이다. 진정 아름답고 화려한 빛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 빛을 과시하지 않는다.

  도를 닦는 것은 날마다 비우는 것이다. 잘 비워야 내년에도 실하게 채울 수 있을 것이다. 한해를 보내며 채움보다 비움을 강조한 노자의 위도일손을 연말화두로 삼아 한해를 마감해 보자. 

박재희의 비움의 경쟁력

2007.12.20 포스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