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엄마의 약속

죽장 2007. 10. 5. 08:35
‘싱가폴할머니’는 올해 87세로 본명이 ‘마리얌’이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나이 26살 때 사랑하는 남자를 따라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고 하니 62년 전의 일이다. 마리얌 할머니와 그 가족이 62년 만에 만나는 사연을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세월이 흘러도 결코 지워지지 않는 가족애가 오래도록 가슴속을 맴돌며 떠나질 않고 있다.

비행기 트랩을 오르는 할머니는 태어난 고향도 모르고, 어린시절을 보낸 동네도 기억에 가물거리지만 잊지 않고 있는 것은 떠나올 때 했던 막내딸 ‘짐마흐’와의 약속이었다. 회사에 취직을 해서 돈을 벌어 과자를 사가지고 오겠다 했던 약속을 이제사 지키게 되었다며 감개무량해 한다.

말레이시아 남쪽 도시 ‘조호마루’가 할머니의 고향이었다. 비행기로 반나절정도밖에 되지 않는 거리에 살고 있는 막내딸은 일흔 가까운 나이의 또 다른 할머니로서 몸까지 불편한 듯했다. 할머니는 막내딸의 손을 놓지 않은 채 다른 한손으로는 쥐고 온 과자보따리를 끌어당겨 쥐어 주었다. 엄마가 이렇게 늦게야 약속을 지키게 되어 미안하다며 눈물을 훔친다.

난 할머니의 마음이 궁금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가 가까스로 멈춘 어둡던 그 시절에 한 남자를 얼마나 사랑했기에 이역만리를 따라왔을까? 포로수용소에서 만난 그 남자는 얼마 후 할머니를 버렸다. 60여년의 세월, 할머니는 무정한 그 남자를 원망했는지, 아니면 죽도록 사랑했던 사람인지라 그 조차도 용서하고 살았는지 물어보고 싶다.

할머니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버리고 떠난 남자와의 사랑이나, 버림받은 아녀자로서의 미움이었다면 아마도 신파조의 이야기일 것이다. 할머니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막내딸과의 약속을 지키지 전에는 눈을 감을 수 없다는 모성애의 각오가 있었기에 눈을 감지 못하고 살아왔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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