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쿠알라룸푸르 경기장

죽장 2007. 8. 5. 23:29
운동선수가 못된 나는 경기의 관전을 좋아한다. 그것도 경기장에 나가서 열광적인 태도로 관전하는 것이 아니라 기껏해야 텔레비전 앞에 앉아 박수치고 목청을 높이면서 응원하는 정도가 전부이다. 대결하는 양 팀 중에서 모교, 동향 등 손끝만큼이라도 인연이 있는 팀을 우리 편으로 삼아 이기면 뛸 듯이 기뻐하고 지기라도 하면 공연히 심사가 불편해지고는 하였다.

그런데 이번 우연히 경기장의 스탠드에 앉아 직접 관전하면서 응원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것도 예사 경기가 아니라 아시아축구경기대회 준결승 우리 대한민국과 이라크가 역시적인 대결을 하는 경기였다. 그것도 국내의 운동장이 아니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종합경기장이었다.

우리 일행 사십여 명은 저녁식사도 하는둥마는둥 하며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경기장에 도착하는 데 소나기가 마중을 한다. 누군가가 나누어준 응원용품을 손에 들고 들어서니 경기장 안은 시작 전부터 흥분의 도가니 그 자체였다. 이라크 응원단이 불어대는 피리소리와, 우리 응원단이 외치는 “대-한민국”이란 함성이 뒤범벅이 되어 넓은 경기장을 온통 흔들고 있었다.

우측 전광판에는 경기시간이 나타나고, 좌측 전광판에는 경기장면이 비춰졌다. 양팀 선수들은 비에 흠뻑 젖은 잔디밭을 종횡무진하며 내달렸고, 응원단들은 목이 쉬었지만 양팀 모두 득점이 되지 않았다. 전후반전에 이어 연장 전후반전까지 끝이 났어도 점수가 없자 마침내는 승부차기로 결판을 내게 되었다. 운이 따르지 않아 그런지 안타깝게도 지고 말았다.

일순 응원단의 얼굴에 낙담의 빛이 역력했다. 그때 누군가가 “대 한민국”을 선창하니 스탠드의 관중들은 미동도 않은 채 “대-한민국”을 외쳤다. 다시금 붉은 물결이 경기장을 흔들어대었다. 선수들이 가까이 다가와 고마움의 고개를 숙인 후 제자리로 돌아갈 때까지 “대-한민국”의 함성은 끊어지지 않았다.

감동이 한참동안이나 계속되었다.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치는 우리는 모두 하나임을 확인하면서 일어섰다.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축구장에서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경기장에서 외친 나라사랑의 메아리가 언제까지나 살아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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