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추억의 땅 선산

죽장 2007. 6. 20. 07:49
  선산 서쪽 오리쯤에 고찰 죽장사가 있다. 대웅전을 비롯한 건물은 근래 들어 지어진 것들이지만 앞마당에는 국보 130호로 지정된 웅장한 5층 석탑이 있어 자비의 숨결이 천년이나 머물러 있다. 멀리 신작로에서도 바라보이는 석탑은 마을의 자부심이었다. 낙동강 건너 도개면에 모례가 살았던 집의 우물과, 태조산 중턱에 아도화상이 지은 도리사로 인하여 이 지역이 불교와 관계가 아주 깊음을 알 수 있다.

  선산 동쪽의 독동리에는 천연기념물 357호인 반송이 400세의 나이를 자랑하고 있다. 부채살 모양으로 자라고 있는 이 반송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되었다 한다. 독동리 앞에는 고려 태조 왕건이 그 아들 신검과 일전을 겨루었던 어갱이들이 있다.

  학교라고는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었던 아버지께서 틈이 날 때마다 강조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그것은 「전국의 인재 반이 영남에서 나고, 영남의 인재 반이 선산에서 난다」는 택리지의 구절이었다. 어린 나를 향한 설득력 있는 웅변이자 추상같은 압력이었다.

  학교로 가려면 단계천 돌다리 건너 거미가 집을 짓고 있는 비각을 지나야 한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비각은 세종 20년에 장원급제한 하위지, 사육신의 한사람으로 충절의 표상이 된 바로 그 어른의 유허비였다. 하위지가 태어나자 집 앞 개울에 사흘 동안이나 붉은 물이 흘러서 단계천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다.

  선산에서 금오산이 있는 구미까지는 사십리 거리이다. 금오산 초입에 고려조의 충신 길재 선생이 고사리만 뜯어 먹으며 살았다는 채미정이 있다. 우리나라 수출산업의 메카로 자리매김 되어 있는 구미도 과거에는 선산의 한 부분이었다. 

  언젠가 꼭 한번은 털어 놓으리라 마음먹었던 고향 이야기를 하고나니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후련하다. 누가 뭐라 해도 불교의 고장, 선비의 고장이라는 이름에 부족함이 없는 선산 땅은 내 영원한 추억의 본산이기도 하지만 아버지의 말씀이 금언으로 빛을 발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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