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유배지에서의 사랑

죽장 2007. 2. 27. 14:07
  공항을 빠져나오니 한 줄로 늘어선 택시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맨 앞의 택시에 올라서는 삼성혈(三姓穴)로 가지고 하였다. 기사는 자신을 ‘전주이씨’라고 밝히면서 몸에 밴 관광안내를 시작한다.
  “제주도 토박이 양반은 삼성혈에서 태어난 고(高)·부(夫)·양(梁)씨 뿐입니다. 그러니 제주도에 살고 있는 여타의 성씨 모두는 육지에서 귀향 온 사람들이 퍼뜨린 후손들입니다. 나를 포함해서요.”
  전주이씨 회안대군파인 아내가 귀를 쫑긋 세우고 듣다가 묻는다.
   “요즘 텔레비전에서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대조영』에 ‘부귀원’과 ‘양만춘’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들과 탈렌트 ‘고두심’이 제주도 원주민의 후예이겠지요. 전주이씨 당신은 탐라섬으로 귀양 온 어느 왕손의 자식입니까.”

  육지에서 바다 건너 먼 제주로 귀향 온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역설일 것이다. 현지에 탄생했던 그들의 사랑이 제주 앞바다에 가득했고, 흔적 또한 한라산만큼이나 높이 쌓였으리라. 제주도 역사에 박식한 택시기사는 설명을 멈추지 않는다.

  “유배지로서의 내력을 아십니까?
  고려조 원(元)나라가 왕족과 왕권을 위협할 만한 신하 170여명을 이곳으로 유배보낸 것을 시작으로, 조선왕조 500년 동안에 정치적인 인물 300여명이 제주로 귀향을 왔습니다. 우리 역사를 주름잡던 송시열, 최익현, 이익, 장희재 등에서부터 구한말 정치적 거물인 김윤식과 박영효 그리고 승려 보우, 천주교도 이승훈이 제주로 유배를 왔습니다. 특히 추사 김정희는 지금의 법무부차관격인 형조참판의 벼슬을 하던 55세부터 63세까지 8년 동안 유배 생활을 했으니 유배의 역사가 얼마나 화려합니까.

  유배살이의 형태도 가지가지였답니다.
  왕족들의 경우 내통을 우려하여 그 누구도 유배 적소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았는가 하면, 김정희, 최익현, 김윤식, 박영효 등은 목사나 주민들의 각별한 대우와 존경을 받으면서 지냈다고 합니다. 또 보우는 목사에게 곤장을 맞아 죽었으며, 다산 정약용의 맏형 정약현의 딸은 제주목 관노로 37년을 살다가 사망했습니다. 정조 때 조정철은 제주에 유배되어 홍윤애와의 애틋한 사랑을 키웠으나 집안끼리 원수지간이었던 김시구가 제주목사로 부임하면서 사랑은 깨지고 말았지요. 훗날 유배에서 풀린 조정철은 제주목사로 부임하여 홍윤애의 무덤에 묘비를 세워 연민의 정을 보여주었다니 요즘 생각해도 멋있는 사람 아닙니까.”

  귀향지에서의 선비들의 삶이며 사랑에 취해 있다가 정신을 차리니 택시는 삼성혈에 도착하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4,300여 년 전. 사람이 살지 않은 한라산 북쪽 기슭에 삼신인(三神人)이 동시에 태어났는데, 이들이 고씨, 부씨, 양씨의 시조라 한다. 성혈은 눈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쌓이거나 고이지 않아 그 깊이를 알 수 없다는 말을 들으며 자세히 내려다보았다. 경사면에서 자라고 있는 수목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목례를 올리고 있는 듯 중심부를 향하여 고개를 숙이고 있다.

  정치적 추방과 격리를 위한 최적의 유배지였던 제주도. 수많은 지식인들을 감금시켰고 유폐시켰던 섬 제주도였지만 귀향 온 선비들이 끼친 긍정적인 면도 있다. 유배온 당사자들에겐 절망적인 고통임에 틀림없지만, 제주도민에게는 당대 최고 지식인으로부터 직접 육지의 문화와 사상, 정신을 배워 상대적으로 낙후된 제주의 학문과 문화를 발전시키는 촉매제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대원군의 하야를 이끌어내었던 최익현은 제주 유배기간 동안 제주 유림들에게 큰 영향을 주어, 후일 제주 의병항쟁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추사 김정희는 9년간의 유배기간 동안 학문을 전수했을 뿐 아니라 필생의 역작 추사체를 완성시켰으며, 우리나라 문인화 중 최고 걸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는 '세한도'를 그린 곳이니 더 말해 뭣하겠는가.

  제주도는 조선 시대 정치사의 부침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과 피울음으로 절망하던 섬이었다. 유배인들에게 있어서 제주도에서의 생활은 죽음보다 더 괴로운 비운의 시간이었고, 그들의 미래는 죽음 외에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자기 상실을 처절히 실감하는 장소였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 제주도가 절망과 외로움으로 뒤범벅인 채 죽음만을 기다리는 땅이었다는 사실은 그냥 흘러간 역사일 다름이다. 메마른 땅에도 꽃은 피듯이 죽음의 땅 유배지에도 사랑의 꽃은 피어난다. 더구나 장구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고 있는 사랑은 향기가 더욱 진하다. 제주도의 슬픈 역사가 아름다운 역사로 살아 있음을 보면서 삼성혈을 나섰다. 나는 한참동안 궁금했던 것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기사양반, 조정철이 세운 홍윤애의 묘비는 어디에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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