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단상

소쩍새 울음

죽장 2005. 11. 30. 16:15
 

소쩍새 울음

- 調整記 -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는 울었나보다’로 시작되는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를 주절거리며 다닌 세월이었다. 봄부터 업무를 분장하여 활동을 하였으며, 드디어 국화가 활짝 핀 가을이 된 것이다. 11월 들어서면서 모두가 상당한 긴장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았다. 각자가 맡은 일을 묵묵히 그리고 열심히 하였다. 머리를 조아리고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일임에도 싫은 표정 하나 없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나날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결과를 중간점검 하는 회의도 잦아졌다. 처음에는 막연한 상태의 홍보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유관심자 파악, 면담, 인원 확정, 지원서 작성하여 접수에 이르기까지 단계도 많고 넘어야 하는 산도 많았다. 초기의 뜬구름 잡는 식의 대화는 차츰 구체성을 띄어갔고, 서먹하던 대면상황도 익숙해져갔다.

  1차 점검 결과 50장 이상 초과할 것 같다는 계산이 나왔다. 이 숫자에서 몇 명이라도 증가하면 했지 절대로 줄지는 않을 것이라는 내용이 알려지면서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흘렀다. 오래 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 미소도 잠시 뿐, 곧이어 시작된 조정작업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단 하나라도 떨어져서는 곤란하며, 지역의 희망자를 우선시 할 필요도 있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인 반면, 상대방 역시도 본인의 희망과 후견인의 면담을 거쳐 어렵게 최종 확정된 사항이기 때문에 변경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받아오는 과정에서 벌어진 해프닝이다.

  H교에서는 처음 두장이었는데 석장을 내밀며 받으라는 것이었다. 전체상황을 고려하여 당연히 사양할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규정을 들먹거리며 고압적인 말투까지 서슴지 않는 것이었다. 협의해서 다시 오겠다며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고속도로로 돌아오는 도중 연락을 받고 다시 돌아가 받아왔다. 두장만 받기로 데스크와 어렵게 협의가 되었던 것이다. G교에서는 더욱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최종 협의는 두장이었는데 막상 가니 석장을 내미는 것이었다. 그럴 수는 없다는 말에 그러면 한 장도 주지 않겠다며 압박해왔다. 서운한 표정을 지으며 그냥 일어서기는 했지만 내심 크게 고마웠음은 물론이다. 또 처음 25장 정도이던 K교도 최종 8장으로 조정하기가 힘이 들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와중에 더욱 가슴 아픈 것은 그 중 한 장을 본의 아니게 버릴 수밖에 없음이었다. 이렇게 어려운 조정작업을 거쳤음에도 결국 12장이 초과되었다.

  길게 한숨을 내쉬며 돌아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한 장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하여 간곡하게 설명하던 처음의 입장이 바뀌어 다음 순간에는 단 몇 장이라도 제외시켜 달라며 사정하던 일이며, 한 장이라도 떨어뜨리면 안 된다며 오히려 반대 입장이 되어 간청해오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대단원의 막이 성공적으로 내렸다. 봄부터 울었던 소쩍새 덕분에 금년 농사는 풍년이 되었다. 소쩍새 울음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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