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 송 찬 호
그해 봄 결혼식 날 아침 네가 집을 떠나면서
나보고 찔레나무숲에 가보라 하였다
나는 거울 앞에 앉아 한쪽 눈썹을 밀면서
그 눈썹 자리에 초승달이 돋을 때쯤이면
너를 잊을 수 있겠다 장담하였던 것인데
읍내 예식장이 떠들썩했겠다
신부도 기쁜 눈물 흘렸겠다
나는 기어이 찔레나무숲으로 달려가
덤불 아래 엎어놓은 하얀 사기 사발 속
너의 편지를 읽긴 읽었던 것인데
차마 다 읽지는 못하였다
세월은 흘렀다
타관을 떠돌기 어언 이십 수년
삶이 그렇데
징소리 한 번에 화들짝 놀라 엉겁결에 무대에 뛰어오르는 거
어쩌다 고향 뒷산 그 옛 찔레나무 앞에 섰을 때
덤불 아래 그 흰 빛 사기 희미한데
예나 지금이나 찔레꽃은 하얬어라
벙어리처럼 하얬어라
눈썹도 없는 것이
꼭 눈썹도 없는 것이
찔레나무 덤불 아래서 오월의 뱀이 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