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생각

찔레꽃

죽장 2016. 5. 20. 16:18

 

찔레꽃

- 송 찬 호

 

그해 봄 결혼식 날 아침 네가 집을 떠나면서

나보고 찔레나무숲에 가보라 하였다

 

나는 거울 앞에 앉아 한쪽 눈썹을 밀면서

그 눈썹 자리에 초승달이 돋을 때쯤이면

너를 잊을 수 있겠다 장담하였던 것인데

 

읍내 예식장이 떠들썩했겠다

신부도 기쁜 눈물 흘렸겠다

나는 기어이 찔레나무숲으로 달려가

덤불 아래 엎어놓은 하얀 사기 사발 속

너의 편지를 읽긴 읽었던 것인데

차마 다 읽지는 못하였다

 

세월은 흘렀다

타관을 떠돌기 어언 이십 수년

삶이 그렇데

징소리 한 번에 화들짝 놀라 엉겁결에 무대에 뛰어오르는 거

어쩌다 고향 뒷산 그 옛 찔레나무 앞에 섰을 때

덤불 아래 그 흰 빛 사기 희미한데

 

예나 지금이나 찔레꽃은 하얬어라

벙어리처럼 하얬어라

눈썹도 없는 것이

꼭 눈썹도 없는 것이

찔레나무 덤불 아래서 오월의 뱀이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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