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연해주 할아버지

죽장 2014. 12. 25. 22:16

 

  겨울의 초입인데도 태평양에 잇닿은 아무르만은 얼었다. 끝을 알 수 없는 얼음판이 온통 눈으로 덮여 설평원이 되어 있다. 설평원 위에 펭퀸의 무리들인 양 검은 점들이 웅크리고 있다. 영하 20도의 기온쯤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얼음장에 구멍을 뚫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모습이다. 얼음판 위에서 낚싯줄을 잡고 있는 부동의 자세가 블라디보스톡에서 마주한 풍경의 첫 페이지라면, 두 번째 페이지는 고려인 할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을 적시며 흐르는 눈물이다.

 

  30년생 이니 올해 여든 다섯의 나이다. 할아버지는 할 말이 너무 많은 듯 입을 열기도 전에 목소리가 떨린다. 냉정을 찾으려는 머릿속과는 달리 서러움이 복받쳐 올라 말이 제대로 나오질 않는 탓이다.

  77년 전, 목적지도 모르는 채 온 가족이 빈 손으로 내쫓겨 올라 탄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굶주림과 공포 그 자체였다. 밤낮없이 달린 6,000km 여행의 끝에 여덟 살 소년이 내린 곳은 척박한 땅 중앙아시아였다며 기억을 더듬는다.

  차라리 한 자락 악몽이었으면 얼마나 다행이랴. 하지만 그것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아버지는 가끔 국경 너머 있는 고향의 풍습들을 들려주면서 고국의 말과 글을 잊어서는 안된다 했지만 당장에 급한 것은 죽지 않고 살아남는 문제였다. 그렇게 살아온 모진 세월 오십 년에도 결코 잊을 수 없었던 것은 제2의 고향 연해주였다.

  카자흐스탄 알마타에서 연해주 우수리스크로 다시 이주해온지 23년이 되었는데 나는 아직도 이렇게 살아 있다며 눈을 감는 할아버지. 한꺼번에 토해 낸 감정의 조각들을 정리하며 길고 긴 한숨과 함께 빛바랜 사진 한 장을 펴든다. ‘이 분이 아버지이고, 이게 동생’이라며 기어코 눈물을 쏱는다. 가슴 속에 맺힌 응어리를 털어놓으면서 눈물 조절장치가 느슨해 졌음이다.

 

  어찌 이 할아버지 한 분 뿐이랴. 피를 나눈 동포 수 십 만 명이 춥고 배고픈 땅에서 천대 받으며 살아왔고, 지금도 동토의 땅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다. 결코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그들의 가슴에 맺힌 한의 응어리를 쌓으면 백두산보다 높으리라. 그들이 흘렸던 눈물을 모으면 두만강 압록강 강물을 합친 것보다 많을 것이다.

  백설로 뒤덮힌 저 연해주 블라디보스톡에도 봄은 올 것이다. 따스한 봄바람이 할아버지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으면 좋겠다. 봄이 오면 저 넓은 벌판에 겨울을 이긴 들풀들이 꽃을 피우듯 할아버지의 아픈 가슴에 작은 꽃이 만발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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