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자작나무 사연

죽장 2014. 12. 26. 20:18

자작나무 사연

 

 

  전동차가 블라디보스톡 중앙역을 출발하였다. 대륙횡단철도의 출발점에서 잠시 동안이지만 시베리아를 향하여 러시아 대륙을 가로질러가는 기분에 잠겨 본다. 얼어붙은 아무르만을 우측에 끼고 얼마나 달렸을까. 출발한 지 30여 분만에 대륙횡단의 꿈을 접고 버스로 갈아탔다.

  우수리스크로 향하는 길은 양편으로 늘어선 자작나무 숲과 함께 달린다. 이파리는 몽땅 떨어지고 하얀 가지만 흔들리고 있는 자작나무다. 겨울이라서 더 운치가 있는 것인가. 눈밭 자작나무 숲에 내리면 곱고 맑은 바람이 안겨 올 것 같다. 알아들을 수 없는 현지 언어로 뭔가 말을 걸어 올 듯하다.

  자작나무가 주는 감정을 정리하기도 전에 우수리스크 극동대학에 도착했다. 한국어를 전공하는 학생들은 원주민자녀 뿐 아니라 고려인 3세, 4세들도 상당수 있었다. 우리 땅 독도 이야기를 듣는 학생들의 빛나는 눈망울을 보았다. 대학과 이웃해 있는 고려인 문화원에 가서는 찌든 가난을 떨쳐버리고 싶은 일념으로 국경을 넘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시가지 곳곳에 남아 있는 독립운동의 흔적을 확인하였다.

  또 시내 중심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발해성터가 있었다. 눈 덮인 언덕에 올라서니 천지가 구분되지 않을 만큼 광활한 대지가 펼쳐진다. 그 옛날 대륙을 경영했던 우리 조상들의 기상이 머물러 있다가 성큼 다가온다.

  다시 블라디보스톡으로 돌아오는 길도 자작나무길 150km이다. 흐려진 차창을 열심히 닦아가며 자작나무 경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돌아가면 어디서 다시 자작나무숲을 볼 수 있으랴. 저들도 아쉬움을 차마 떨쳐버릴 수 없어선지 백설밭에 맨발로 떼 지어 서서 손을 흔들고 있다.

 

               국경을 넘을 때 기꺼이 손을 내밀었고,

               삶에 지친 신세타령에 귀 기울여주었고,

               아, 두고 온 산하 그리워 할 때마다

               아픈 가슴에 위로를 준 자작나무

 

               그 자작나무가 말을 걸어온다.

               그 자작나무가 사연을 전해온다.

 

               자작자작 소리 내며 탄다고 붙여진 이름

               하얀 껍질이 젖어도 불이 잘 붙는다는 자작나무가

               지금 돌아와 눈 감으니

               눈물 없어도 소리없이 타오르네.

               하얗게 안겨오네.

 

               자작나무 한 맺힌 사연.

 

[2014.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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