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세계

감자꽃

죽장 2014. 8. 4. 17:09

 

[ "감자꽃"은 이번에 내놓은 수필선집의 제목이기도 하다.

여러 해 전에 쓴 것이지만 계절에 어을려 다시 올린다]  

 

   진부령 너머 오대산 아래를 지나다가 감자꽃이 만발한 감자밭을 만났다. 만난 것이 아니라 뙤약볕 아래 무리 지어 자라고 있는 감자밭 사이로 지나가게 되었다. 감자밭이사 어딘들 없을 것이며, 감자밭에 피어있는 감자꽃이 뭐 대수랴만 오늘은 무심코 지나치고는 하던 감자밭과 감자꽃이 아니었다. 발길을 멈추고 감자밭 가까이에 갔다.

   넓은 밭에 싱싱하게 자라고 있는 감자 이랑이 쭈욱 뻗어 언덕을 넘고 있다. 밭은 아버지의 등처럼 넓적하게 굽어 있었다. 감자꽃은 결코 화려하지 않은 어머니의 얼굴이다. 오랜 가뭄에도 싱싱하게 자라는 푸른빛은 아버지의 희망이었고, 진한 젖빛으로 피어있는 감자꽃은 어머니 가슴에서 쏟아지는 생명의 근원이다. 감자밭 한가운데 이미 오래 전에 저 세상으로 가신 부모님이 서 계셨다. 반가웠다.

   우리 집에는 작은 감자밭이 있었다. 감자밭에 나가 보면 완두콩이 띄엄띄엄 자라고 있었다. 어떤 날은 개구리가 뛰는 감자밭에서 꽃뱀을 만나기도 했었다. '흰 꽃 핀 것은 흰감자, 자주 꽃 핀 것은 자주감자'라는 노래가 있었지만 대부분이 자주감자였다. 어른들이 보이지 않을 때 손으로 땅을 헤집고 살그머니 후벼내어 깨물면 아린 맛으로 전신이 흔들렸다. 그야말로 '생감자 맛'이었다.

   아버지는 서둘러 감자를 캐내고 그 땅에 모내기를 하였다. 가마니에 담겨 마루 끝에 자리한 감자는 춘궁을 모면하는 긴요한 양식이었다. 어머니는 꽁보리밥에 감자를 섞는 '감자밥'을 자주 하셨다. 어떤 때는 삶은 감자 몇 알이 점심식사의 전부이기도 했다. 가끔은 짚불에 감자를 구워먹기도 했지만 밥에 묻혀 있는 감자는 정말로 먹기 싫었다. 나중에는 아예 감자 자체가 싫어졌다. 내 어린 시절의 감자는 가난의 상징이었다.

   감자는 영양이 많아 오늘날 세계인이 선호하는 식품이다. 가난했던 그 시절 감자가 영양실조를 막아주는 식품인 줄 아셨는지 모르지만 부모님은 해마다 감자농사를 지으셨다. 어른들은 먹기 싫다는 감자를 억지로 먹이면서 가난을 원망했을 것이다. 그 분들은 감자밭에서 흘렸던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추억이 된 세월이 사십 년도 더 흘러간 지금도 감자 값 하락으로 감자농사꾼들이 어려움을 겪는다는 소문도 들린다. 예나 지금이나 감자와 가난의 상관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내는 완두콩을 넣어 밥을 짓고는 한다. 달짝지근한 콩맛이 일품이다. "입맛도 없는데 오늘 저녁에는 감자나 삶아 먹을까" 하는 내 제의에 아내의 눈이 둥그렇다. 한동안 감자밭이 아버지가 되고, 감자꽃이 엄마가 되어 눈에 어른거릴 것이다. 진부령 너머 오대산 아래의 감자밭과 그곳에 핀 감자꽃이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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