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생각

풋대추

죽장 2014. 11. 4. 16:31

 

  노랗게 단풍든 이파리들 사이로 높아진 하늘이 곱다. 고운 하늘을 배경으로 풋대추가 익으면 가을이 한창이다. 어쩌다 걸어가는 시골길에서 불긋불긋 풋대추 익어가는 풍경과 만나면 나도 몰래 잠재되어 있던 도벽이 고개를 든다. 가슴 속 깊은 곳에 잠자고 있던 추억 때문이다.

 

          친구네 대추나무는 동네 뒤편 밭둑에 있었다.

          가을로 접어들면 이파리 뒤에 숨어있던 대추가

          어느새 소눈깔만큼이나 크게 자라 있었다.

          그 녀석은 대추도둑을 지키자며 꼭 나를 불러내고는 하였다.

          저는 주인이랍시고 익어가는 풋대추를 따먹으면서

          너도 하나 따먹으라는 말을 끝내 하지 않았다.

          친구의 입 안에서 와삭 소리 내며 깨지는 풋대추

          그 환상적인 단맛이 입안을 채웠었다.

 

  어제는 아내와 김천 지례에 살고 있는 친구 Y네 집에 갔더니 마당에 멍석을 깔아놓고 대추를 말리고 있었다. 군침이 돌아 주인이 보거나말거나 집어서 입에 넣었다. 나를 본 친구는 남은 대추를 털자며 긴 작대기를 들고 나선다. 대문 앞 밭둑에 서있는 대추나무 꼭대기에는 잘 익은 대추가 간간이 매달려 있었다.

  작대기를 휘두를 때마다 대추가 툭툭 떨어지고 노릿하게 물들어가는 이파리는 팔랑거리며 천천히 날아든다. 대추 떨어지는 소리가 난 주변을 두리번거리면 대추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하나는 입에 넣고 하나는 광주리에 담았다. 작은 광주리도 채워지고, 내 배도 금방 불러졌다.

  먹고 남은 풋대추를 봉지 가득 담아 돌아온다. 제삿상 앞에서 대추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아버지보다 내 가슴에 달콤한 풋대추의 한을 남긴 채 저 세상으로 훌쩍 떠나고 없는 그 녀석이 더 생각난다. 미치도록 먹고 싶었던 그 시절의 풋대추 맛을 반백년이 지난 이날까지 잊지 못하고 있음이다. 눈을 감으니 파란 하늘로 뻗은 나뭇가지에 남겨놓고 온 그 풋대추 한 알이 눈에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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