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6.23, 조선일보. 가수 김창완 사라지는 것들을 위하여]
꽃밭 옆 장독대는 어디로… 그리움이 아픔이 됩니다
좁은 골목길 양쪽으로 지붕과 지붕이 거의 맞닿을 정도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어도 웬만한 집이면 작은 꽃밭과 장독대 정도는 있었다. 채송화와 봉숭아 맨드라미와 백일홍 정도만 심어놓아도 소박하지만 제법 벌 나비가 찾아들 빛깔 고운 꽃들이 피어났고, 그 정도 꽃밭을 가꾸는 데는 자리가 그리 많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해바라기나 포도나무 대추나무 또는 살구나무 라일락 정도까지 욕심을 내면 좀 번듯한 마당이 필요했다.
꽃밭을 가꾸는 이유는 꽃을 보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기도 했지만 뭔가를 보살핀다는 자혜(慈惠)로움이 더 근본적인 이유였으며, 나고 사라지는 세월의 무상함을 꽃으로 가늠하겠다는 낭만적 정취의 발로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침이면 할아버지는 맨드라미의 시든 잎사귀를 따주었고 할머니는 꽃밭에 정성껏 물을 주었다. 꽃밭은 대문 바로 옆에 조성해서 집 안에 들어서는 사람을 제일 먼저 반기게 하기도 했지만 마당 한가운데 꾸며 놓고 어느 방에서나 볼 수 있게 하기도 했다.
꽃밭이 흙의 사업이요 사람의 일이었다면, 장독대는 하늘의 사업이요 사람의 기도였다. 일단 장독대는 집 안에서 제일 해가 잘 드는 곳에 마련했다. 장독대를 높이고 그 아래 공간은 광이나 목욕탕을 들였다. 장은 많은 먹거리의 기본이 되었다. 그래서 장은 담글 때부터 마음가짐을 달리했으며 부정 타지 않도록 목욕재계하는 걸 잊지 않았다. 장독대는 늘 청결하게 유지했다. 햇볕이 좋은 날은 항아리 뚜껑을 열어놓았다. 그러다 소나기라도 내릴라치면 집마다 장독 뚜껑 덮으라는 소리가 먼저 튀어나왔다.
장맛은 집마다 조금씩 달랐다. 그건 일종의 가풍이었으며 자존심이었다. 간장독은 컸고 된장독 고추장 단지는 좀 작았는데 보통 진한 갈색이었다. 소금 단지는 깊이가 좀 있는 독을 썼는데 다른 항아리들은 유약을 칠하고 한 번 더 구워서 표면이 반질반질한 반면 소금 단지는 그냥 초벌만 구운 항아리인지 표면이 거칠었다. 그리고 진한 회색이었다.
꽃밭에는 채송화처럼 작은 꽃을 다른 꽃보다 앞에 심었는데 장독대의 항아리 위치도 작은 항아리가 앞쪽에 나란히 앉고 큰 항아리는 꽃밭으로 치자면 해바라기나 파초 심는 자리쯤을 차지했다. 생활 속 거의 모든 것의 자리가 정해져 있었다. 방 안에서 어른들과 아이들 자리, 밥상머리에 둘러앉는 순서, 수저 드는 순서…. 집을 들고 날 때도 어른이 먼저 나서고 들어와야만 했다. 그런 식으로 장독대 자리를 보자면 어쩌면 집에서 가장 높은 데를 차지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그런 사정은 서열 문제라기보다는 생활의 지혜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장이 잘 담기는지 여부를 액운과 연관시켜 생각하던 시절이었으니 장독대 위치가 후미진 광의 옆자리나 뒷간 근처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성(至誠)이 가서 머무를 수 있는 곳에 장독대를 마련하고 정성이 가서 닿을 수 있는 곳에 꽃밭이 있었다. 늘 마음이 머물 곳이 있었던 셈이다.
그런 장독대와 집 안의 꽃밭이 사라지고 있다. 화려한 셰프의 명함 뒤로 어머니의 손맛은 사라지고 플로리스트의 가위질 밑에 아침이면 창가를 타고 올라 푸른 기상나팔을 불던 나팔꽃들이 숨을 죽인다. 사라지는 것들이 아픔을 안겨준다. 이것도 환상지통(幻想肢痛·절단된 몸의 부위가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며 아파오는 것)이 아닐는지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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