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생각

4H 구락부

죽장 2014. 6. 5. 11:53

[2014.6.5, 조선일보 만물상]

4H 구락부

 

언론계 선배 중에 닭고기를 안 드는 분이 있었다. 사연을 여쭸더니 중학생 때 고향 충남 예산에서 4H구락부 활동하던 얘기를 했다. 병아리를 사다 정성을 다해 키웠다고 한다. 병아리들이 어미 닭이 되면 그걸 판 돈을 모아 새끼 돼지를 샀다. 돼지를 키워 팔면 학비며 살림에 큰 보탬이 됐다. 선배는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은 병아리 덕"이라며 웃었다. '그렇다고 닭고기를 안 자실 것까지야…' 했지만 어릴 적 4H 활동에 대한 선배의 애틋한 마음은 확실하게 전해 왔다.

▶1960~70년대 시골에 가면 마을 어귀마다 으레 4H구락부 표석이 서 있었다. 높이 1m쯤 되는 시멘트 비석에 녹색 네 잎 클로버를 그리고 이파리마다 지(智) 덕(德) 노(勞) 체(體) 흰색 네 글자를 새겼다. 표석 맨 밑에는 '○○리 4H구락부'라고 새겨넣었다. 그걸 보면 '고향에 왔구나'하는 느낌이 들었다. 방이나 마루에 네 잎 클로버 무늬 깃발과 함께 '4H 서약'을 걸어놓은 집도 있었다. '나의 머리는 더욱 명석하게 생각하며/ 나의 손은 더욱 위대하게 봉사하며….'

만물상 일러스트

 

▶4H는 머리(Head) 마음(Heart) 손(Hands) 건강(Health)을 뜻하는 영어 단어의 머리글자다. 미국에서 시작한 4H구락부를 1947년 국내에 들여와 경기도 화성에 첫 모임을 만든 사람은 미군정 시절 경기도 책임자였던 찰스 앤더슨 중령이었다. 그는 미국 교회나 자선단체들로부터 소나 염소 같은 가축을 기부받아 한 배 가득 부산항으로 실어오기도 했다. 4H구락부가 있는 마을에 나눠줘 키우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한때 4H구락부는 전국에 3만5000개, 회원 100만명에 이르렀다. 4H경진대회에선 돼지 치기, 사료 만들기, 옷 짓기, 산림 가꾸기, 식생활 개선 같은 것들을 겨뤘다. 대통령이 기념사를 할 정도로 중요한 행사였다. 아홉 살부터 스물아홉까지 청소년들이 앞장서 농촌을 바꾸려는 노력이 마을마다 다투어 펼쳐졌다.

 

▶한국4H본부가 올가을 120년 4H 역사상 첫 세계 대회를 서울에서 연다. 75개국 대표 300여명이 참가한다고 한다. 공업화·도시화가 깊어지면서 한국 4H 회원은 8만명으로 줄었다. 지금은 시골 마을에서도 4H구락부 표지석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 해도 농촌 혁명과 사회 변화의 씨앗이 됐던 4H구락부의 자조(自助) 정신은 잊을 수가 없다. 4H구락부와 함께 MRA(도덕재무장운동), RCY(청소년적십자운동) 같은 것들도 그 시절 젊은이들 사이에 활발했다. 뭔가를 새롭게 해보려는 열정이 있던 시절이었다.

 

[나도 중학교 시절 고향에서 4H구락부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내 추억의 보고이자, 성장의 원동력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