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5.20, 조선일보 만물상]
대통령의 눈물
올 3월 박근혜 대통령이 독일 드레스덴 공대에 갔다. 뒬퍼 강당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는 자리였다. 검정 학위복에 쪽빛 머플러를 둘렀다. 만년필
잉크보다 빛이 고왔다. 박 대통령은 20분 넘게 통일 구상을 밝혔다. 연설을 끝내고 기립박수를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한국인이 낀 현악
4중주단이 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연주했다. '누구의 주제련가 맑고 고운 산….' 선율이 나직이 흘렀다. 박 대통령이 오른손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눈가를 훔쳤다.
▶박 대통령은 눈물이 흔하지 않다. 여간해선 눈물기를 비치지 않는다. 그래도 독일 땅은 각별했을 것이다.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은 독일 땅에 와서 피울음을 울었다. 1964년 루르 탄광지대 함보른광산에 왔을 때 광부·간호사와 더불어 애국가를 부르다
뜨거운 것을 쏟았다. 세계한인지도자대회 공동의장을 지낸 김길남씨는 말했다. "이끼 낀 궁핍과 가난을 벗어나야 한다는 박정희 대통령의 눈물이 오늘
세계 10대 경제 강국 한국의 씨앗이었다."
▶부모는 자식을 잃으면 아이 이름을 부르며 운다. 어제 박근혜 대통령도 그리 울었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 춘추관 마이크 앞에 섰다. 세월호 참사를 사과하고 나라의 개혁을 다짐하는 24분 연설 마무리에 이르렀다. 아이들과 의인(義人)들 이름을 부르다 목소리가 흩어졌다. 단원고 학생 권혁규·정차웅·최덕하, 교사 남윤철·최혜정, 세월호 승무원 박지영·김기웅·정현선·양대홍, 민간잠수사 이광욱…. 그 이름을 부르다 대통령은 기어이 붙잡고 있던 눈물 끈을 놓아버렸다.
▶대통령의 부릅뜬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런 '달기똥' 눈물은 참 오랜만에 봤다. 대개는 눈물을 감춘다. 대통령은 눈물 바람이 부끄러웠겠지만 차마 고개를 뒤로 꺾지 못했다. 비서가 챙긴 손수건도 없었다. 대통령은 휴지든 뭐든 뭔가를 꺼내 닦지 않았다. 지난밤에 여러 차례 연설 원고를 미리 읽어봤겠지만 그예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스스로는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전임 대통령들도 많이들 울었다. 후보 때 '눈물 정치' 한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미국이나 중국 지도자도 카메라 앞에서 툭하면 운다. 전쟁과 지진과 테러 희생자 추모식에서 눈물을 떨군다. 어제 박 대통령의 눈물은 흔한 정치적 눈물은 아니었다. 형사로 나온 어떤 배우는 영화 '강력 3반'에서 말했다. "범인이 잡고 싶으면 눈물이 나. 이상하게 눈에서 눈물이 나." 박 대통령의 눈물엔 나라를 참사에 빠뜨린 부조리를 바로잡고 싶다는 소망까지 담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