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단상

학원들의 '공포 마케팅'

죽장 2013. 6. 18. 10:24

[2013.6.18, 조선일보]

학원들의 '공포 마케팅'

- 안석배 사회정책부 차장 -

 

한 사(私)교육 업체 대표가 고교생과 학부모 5000명 앞에 섰다. "선택형 수능은 올해 시행되고 (내년부터는) 사라질 것입니다. 입시 현실을 고려하지 않아 수험생들의 혼란만 키웠습니다."

자리에 앉아있던 학생과 학부모들이 웅성거린다. "올해만 하고 끝이래!" "그럼 내년부턴 어떻게 되는 거야?" 올해 수능에서 A형(쉬운 시험)과 B형(어려운 시험)으로 나눠 치르는 시험이 처음 실시되는데 내년에 당장 이 시험을 중단할 것이라는 말이었다. 교육부는 이 부분에 대해 아직 말이 없는데, 사교육 업체가 나서서 나라의 입시 일정을 결정해 버렸다. 현장이 꿈틀거린다.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이 한 유명하다는 학원에 갔다. 수학 레벨(level) 테스트 후 학원장이 학부모를 부른다. "큰일 났어요. 다른 학생들은 다 끝난 과정인데, 아이가 들을 수업이 없어요. 따로 보충수업을 하든지…." 중학생 대상 어학원에서는 대학입시 수준의 영어 문제를 던져주고 아이들 기를 팍팍 죽인다.

대한민국 학원이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가 '공포 마케팅'이다. 학교의 교육과정을 훨씬 앞선 어려운 문제를 주고 "이 정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상급 학교에 못 간다"고 겁을 준다. 처음엔 흔들리지 않으려고 하는 엄마, 아빠들. 그런데 친구 아들·딸을 보니 어렵다는 과정을 잘 따라가는 것 같다. 사교육이 만들어 놓은 공포 마케팅 프레임에 부모들이 낚이는 순간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교과서 밖에서 시험문제를 내지 마라"고 국무회의에서 얘기했다. 한편으론 대통령이 학교 시험 출제 가이드까지 지시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 정도로 교육문제가 온 국민의 관심사다. 문제는 이 접근 방법이 우리 교육의 핵심을 잘 짚고 있는가이다. 최근 만난 중학교 교사들은 "학교 시험에서 교과서와 교육과정을 벗어난 문제를 출제하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사실 학교 내신 때문에 선행학습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우리 교육에서 주도권은 사교육에 넘어간 지 오래다. 학생들에게는 학교 공부보다 학원에서 제시하는 학업성취 기준을 맞추는 게 더 중요하다. 아이들에게 통용되는 교육과정은 학교가 아닌 학원에서 결정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교사가 학생을 체벌하면 바로 신고하지만, 학원에서는 공부하라고 아이들을 때린다. 종례 시간이 길어지면 "학원 가야 하는데 왜 아이를 안 보내느냐"는 학부모 전화가 걸려 온다.

여당은 중간·기말고사에 교육과정을 벗어난 문제를 내는 것을 금지한 '선행학습금지법'을 국회에 상정했다. 그런데 현장 반응은 떨떠름하다. 어차피 이 법이 학교에만 영향을 미치므로 효과가 미진할 거란 얘기다. 그렇다고 학원의 선행학습을 법으로 금지하는 것이 가능한지, 또 바람직한지도 의문이다.

별다른 방법이 없다. 학교와 교육 당국이 영향력과 주도권을 회복해야 한다. 한 나라 교육정책에 대한 냉소가 사교육 입시설명회에서 쏟아지는 비상식적 상황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