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단상

고마워, 용서 못해, 미안해

죽장 2013. 3. 27. 10:06

[2013.3.27, 동아일보, 광화문에서]

고마워, 용서 못해, 미안해

- 김현미 / 여성동아 팀장 -

 

중학교 2학년 3반 남학생이 자기 집 마당의 감나무에 목을 매 자살했다. 그 아이는 학교에서 심한 왕따를 당했고 그것이 자살의 원인임을 분명히 했다. 유서에 “나는 모든 아이들의 제물이 되었습니다”라고 썼으니까. 또 유서에 4명의 이름을 적고 그들에게 각각 다른 메시지를 남겼다.

“나의 절친이 되어 주어서 고마워.” “(두 사람) 영원히 용서 못해. 끝까지 저주할 거야. 지옥으로 가라!” “귀찮게 해서 미안해. 생일 축하해. 늘 행복하기를 바랄게.”

고마워. 용서 못해. 미안해.

자살한 아이가 남긴 이 세 가지 마음의 의미는 무엇일까. 소설 ‘십자가’(시게마쓰 기요시 지음)는 자살사건이 일어난 후 20년의 세월을 담았다. 가해자인 두 아이가 학교를 그만두고 폭력조직에 들어가 스스로 몰락의 길을 걷는 것은 놀랍지 않다. 오히려 유서에서 ‘절친’으로 지목된 아이가 “절친이라면서 왜 구해주지 않았어”라는 따가운 시선과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이 뜻밖이다.

‘왜 친하지도 않았던 나를 절친이라고 했을까.’

이러한 의문은 어른이 돼 어느새 중학생이 된 그의 아들이 풀어준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해서 동경의 대상인 아이를 혼자만의 ‘절친’으로 삼는다는 것을.

‘미안해’라는 메시지를 받은 여학생 역시 친구가 목을 매기 직전 생일 선물을 주고 싶다며 찾아가도 되느냐고 전화했을 때 “안 돼, 그러지 마”라고 매몰차게 거절한 사실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괴로워한다. 유서 속의 ‘고마워’와 ‘미안해’는 두 아이에게 ‘십자가의 말’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무거워도 내려놓을 수 없고, 발길을 멈출 수도 없고, 살아 있는 한 계속 등에 지고 있어야 하는 십자가.

소설 같은 현실이 아니라 너무나 현실 같은 소설 ‘십자가’를 읽다 보면 가슴이 죄어온다. 왕따가 있다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왕따를 말리지는 않았던, 어쩌면 저 아이 하나가 당함으로써 나머지는 1년을 편히 지낼 수 있다는 이기심이 지배했던 2학년 3반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3월 4일 개학 첫날 아침 부산의 여중생이 “죄송해요, 또다시 외톨이가 될까 봐”라는 유서를 남기고 집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3월 11일 경북 경산의 남자 고교생은 유서에 자신을 괴롭혀 온 5명을 지목하고 아파트 23층에서 뛰어내렸다. 열네 살, 열다섯 살 두 아이가 눈물을 흘리며 죽을 결심을 하기 전에 그들을 살릴 기회는 있었다. 주위의 관심만 있었다면.

핀란드 정부에서 펴낸 ‘청소년 자살 예방 매뉴얼’에 따르면 자살한 청소년의 3분의 2는 그 전에 주변에 자살과 관련된 신호를 보낸다고 한다. 하지만 성인들은 아이가 “자살하겠다”고 해도 실제로 자살하려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관심을 끌고 싶어서 하는 행동으로 여겨 죽음의 신호를 놓치기 쉽다.

더욱이 자살을 고민하던 아이가 갑자기 밝아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 주변 사람들은 자살 위기를 극복했다고 안심하지만, 실제로는 자살 결심을 굳힌 후 아이는 모든 괴로움이 곧 끝난다는 안도감에 편안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아이들은 자살 충동을 부모나 선생님보다 또래 친구들에게 털어놓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친구의 자살을 예방하는 최선책은 친구의 자살 계획 혹은 충동을 성인에게 알리는 것’이라고 교육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여성동아 2012년 9월호 ‘핀란드의 청소년 자살 예방 매뉴얼’).

결국 아이들을 죽음의 저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은 곳곳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가 아니라 주변의 관심이다. 그들이 보내는 ‘작은 신호’를 놓쳤을 때 우리 모두 평생 ‘십자가의 말’을 지고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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