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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계의 아이돌' 노랑·빨강 애벌레 두 마리

죽장 2013. 1. 30. 11:49

[2013.1.30, 조선일보]

 

'애니계의 아이돌' 노랑·빨강 애벌레 두 마리

 

뽀로로·로보카폴리의 양대 산맥이 버티고 있던 한국 애니메이션(K애니) 판도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는 무서운 '아이돌'이 있다. 냄새 진동하는 찻길 건널목 하수구 출신의 애벌레 '라바(Larva·애벌레)' 캐릭터이다. 나비인지 나방인지 혈통도 불분명한 애벌레 콤비 '옐로우'와 '레드'가 주인공이다.

'라바'는 2011년 초 KBS 1TV와 일부 케이블 TV를 통해 대중과 처음 만났다. 착하고 얌전한 다른 어린이 애니메이션들 사이에서 확연히 튀며 조용히 이름을 알려나가던 이 캐릭터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인기몰이에 나섰다. 지난해 7월 인형, 학용품 등 캐릭터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400여종의 상품과 계약을 맺어 석 달 만에 로열티 수입으로만 12억원을 올렸다. 제작사가 추정하는 올해 관련 상품 매출 수입은 600억원 정도. 뽀로로의 연간 매출액 5200억원에는 아직 한참 못 미치지만 대중에 이름을 알린 지 채 2년도 안 된 '신인'치곤 대단한 성적이라는 게 업계의 평이다. '라바'는 현재 경찰청 실종아동찾기·학교 폭력 예방 홍보대사, 복지부의 '대한민국 나눔축제' 홍보대사, 문화부의 에너지절약 홍보대사도 맡고 있다.

해외 진출도 급물살을 타 대만·말레이시아 TV 방영이 확정됐고, 독일·터키와도 수출 협상이 진행 중이다. '뽀로로' '둘리' 등 선배들처럼 극장판 프로젝트도 시작돼 내년 12월쯤 스크린을 통해 팬들과 만날 전망이다. 이달 초부터는 KBS 1TV를 통해 시즌2가 방영되고 있다. '돌풍'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의 무서운 기세다.

귀여운 엽기성으로 무장해 인기몰이에 나선 국산 애니메이션‘라바’의 총천연색 캐릭터들. 맨 아래 두 애벌레가 주인공 옐로우(왼쪽)와 레드이다. /투바엔터테인먼트 제공
라바를 탄생시킨 '아버지'는 제작사 투바엔터테인먼트의 맹주공(41) 감독이 이끄는 기획팀이다. 29일 이메일을 통해 만난 맹 감독은 "라바를 처음 기획한 건 국산 어린이 애니메이션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던 2010년 초"라며 "'좀 지저분하고 우중충하더라도 톡톡 튀어보자'는 생각으로 캐릭터를 찾던 참에 하수구 애벌레를 주인공으로 구상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동료들과 회의하면서 어린 시절 대사 한마디 없어도 충분히 웃고 즐길 수 있었던 찰리 채플린의 코미디와 만화 '톰과 제리'를 많이 떠올렸다"며 "라바는 내 어린 시절 감수성을 불어넣어준 그들에 대한 헌사"라고 했다. 맹 감독의 구상에 따라 투바엔터테인먼트 미술팀 소속 10여명이 상당 기간 밤샘 작업을 거쳐 빨강·노랑·자주 옷을 입은 주인공 애벌레들과 조연들의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라바'의 주요 내용은 잿빛 하수구에 사는 식탐의 화신(옐로우)과 잔꾀 부리다 당하는 찌질이(레드) 두 애벌레가 벌이는 몸 개그이다. 주인공들이 방귀를 '분사'하고 '꺼억' 트림을 하는 등 귀여운 엽기성이 가장 큰 특징. 어린이 콘텐츠의 필수 요소로 꼽히는 교육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이 삐딱함이 역으로 인기의 동력이 됐다는 평가다.

최근 시작된 시즌 2에선 "배경을 다양화하고, 캐릭터 사업의 측면도 고려해" 무대를 하수구에서 가정집으로 옮겼다. 앵무새와 카멜레온 등 애벌레의 '천적 캐릭터'들도 새로운 조연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음식을 보고 군침을 줄줄 흘리거나, 콧구멍으로 비눗방울을 뿜어대며 깔깔거리는 등 주인공들의 너저분한 듯 귀여운 모습은 그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