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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없는 세상'은 좋은 세상일까

죽장 2012. 1. 30. 10:53

[2012.1.30, 조선일보]

'경쟁없는 세상'은 좋은 세상일까

- 이지훈 경제부장  -

 

많은 사람이 경쟁 없는 세상을 꿈꾼다. 아니면 남들은 경쟁하더라도 나만은 경쟁 없는 세상에서 살기를 바란다. 물론 경쟁엔 부작용도 많고, 인간이 경쟁의 노예가 돼서도 안 된다. 하지만 경쟁 없는 세상이 있다면 과연 행복할까.

'나가수'나 '슈퍼스타K'에 경쟁이 없다고 생각해 보라. 프로야구가 친선경기로만 치러진다고 생각해 보라. 보는 사람은 물론이고, 보여주는 가수나 선수도 무미건조할 것이다. 더 좋은 제품을 더 싸게 사기를 요구하는 소비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기업들이 경쟁하기 때문에 더 좋은 제품과 서비스가 나온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게리 베커 교수는 종교조차 경쟁하는 사회에서 훨씬 번성한다고 했다. 한 종교가 지배하는 사회에선 교단이 사람들의 영적 요구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점차 외면받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경쟁에는 필연적으로 낙오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 낙오자에게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도록 국가가 뒷받침해줘야 한다. 정부가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안전망으로 시민사회를 감싸는 것은 자유주의적 가르침과 전혀 어긋나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한편으로는 선의의 경쟁이 벌어지면서 다른 한편으로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어떨까. 변양균 청와대 전 정책실장이 최근 이와 관련해 흥미 있는 분석을 내놓았다. 우리 사회는 그 반대라는 것이다. 그는 그 근거로 지니계수 통계를 들었다. 지니계수는 소득의 분배 정도를 알려주는 지표로 1에 가까울수록 경제활동에 따른 소득불평등이 심하고, 0에 가까울수록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지니계수엔 두 가지가 있다. 시장소득 지니계수와 가처분소득 지니계수이다. 전자는 문자 그대로 내가 일해서 번 돈을 기초로 계산하고, 후자는 세금을 빼고 정부 보조금과 연금을 더해 실제로 쓸 수 있는 소득을 기초로 계산한다.

그런데 한국의 시장소득 지니계수는 선진국과 비교해 크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이 0.34(2010년)인데, 미국 0.46, 독일 0.51, 프랑스 0.48, 일본 0.44(OECD 기준 2005~2007년 수치 중 최근 것)이다. 결과만 보면 한국이 선진국들에 비해 소득이 평준화됐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하지 않거나, 성과에 따른 차등보상이 제대로 안 된다고도 볼 수 있다.

선진국은 시장소득 지니계수가 높아 경쟁이 치열하다고 할 수 있지만, 세금과 보조금·연금을 통해 이 같은 불평등을 시정하기 때문에 가처분소득 지니계수는 확 떨어진다. 독일은 0.51에서 0.30, 프랑스는 0.48에서 0.28, 일본은 0.44에서 0.32로 각각 수치가 크게 변한다. 그런데 한국은 0.34에서 0.31로 약간 떨어져 차이가 거의 나지 않았다. 다시 말해 한국 경제는 경쟁도, 경쟁의 결과로 나타난 불평등의 개선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0.31이란 수치도 선진국에 비해 높지 않아 가처분소득 지니계수로 봐도 한국의 소득불평등 정도는 심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분석에서 얻는 시사점은 여전히 유용하다. 양극화 문제를 푸는 해법은 경쟁을 제한하고, 남들보다 잘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의 뒷다리를 잡아끄는 식이 아니라, 경쟁을 오히려 촉진하되 누구에게나 공정한 기회를 주고 낙오된 이들도 당당하게 다시 무대에 오를 수 있도록 돕는 식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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